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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네
입력 2017.12.03. 12:35 수정 2017.12.04. 08:36 댓글 0개“모두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그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단순함, 선의, 진리가 없는 곳에 위대함은 없다.”
‘전쟁과 평화’라는 걸작을 남긴, 사상가이기도 한 톨스토이의 인간 성찰에는 예리함이 있다.
바둑 인생 50년을 돌아보며 ‘고수의 생각법’을 쓴 조훈현 9단도 정상에 오르는 ‘덕목’의 무게에 대해 애기한 적 있다. 바둑을 통한 ‘인생 훈수’다.
“정상은 아무나 가지 못한다. 실력도 운도 있어야 하지만 인성과 인품이 따라줘야 한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이 없으면 올라섰다가도 곧 떨어진다. 프로 기사 중에서도 잔꾀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화가 나지만 그냥 내버려둔다. 잔머리는 정상에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을 유지하는 인성, 인품과 잔머리는 서로 상대적이다. 비대칭적이다. 세상에는 인간으로서 향내가 나는 사람도 있지만 잔머리꾼들이 더 많다.
요즘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각 정당 대표들의 날선 발언과 움직임을 보면 모두 몹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 또한 끊임없는 메시지 생산을 통해 무언가 변화를 구하고 싶어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들도 한때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한 사람은 구속된 상태이고, 또 한 사람은 법의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언론들의 보도다. 이들의 측근들과 수족 노릇을 한 당시 국정원장들과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 등 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렀거나 구속, 또는 재판 중에 있다. 검찰 수사를 대비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우병우도 위험해 보인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은 자가 어디 정치권뿐이겠는가. 기업과 공직 사회 … 우리 사회 크고 작은 조직, 개개인에게 있어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꿈틀댄다.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야망이란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러한 야망과 꿈, 욕망들이 왜 자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까? 결론은 하나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그 목적을 달성 하려면 사용되는 수단과 방법이 정당해야 한다’는 방법과 절차의 정당성 문제와 마주친다.
변화에는 방향성이 있다. 톨스토이는 그 방향성이 누구나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단순함, 선의, 진리에 근거할 것을 얘기하고 있다. 속셈이 따로 있을 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선 왠지 시끄럽기 마련이다.
큰 일 일수록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 있다. 특히 큰 권력 밑에 있는 사람일수록 조심하라는 얘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참모의 리더십이란 말까지 있을 정도다.
중국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삶의 가치를 음미한 ‘지전(智典)’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두 가지 충성 유형이다. ‘커다란 충성’과 ‘적당한 충성’이다.
‘커다란 충성’은 나라에는 충성하지만 왕에게는 충성하지 않고, 일(공공성)에는 충성하지만 개인에게는 충성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지사형(志士型) 충신으로 양신(良臣)이라 부른다. 양식 있는 참모, 공무원, 직장인들이 해당된다.
‘적당한 충성’이란 왕에게는 충성하지만 나라에는 충성하지 않고, 개인에게는 충성하지만 일에는 충성하지 않는, 권력형 충성이다. 소위 충견이라고 부르는 견신(犬臣)들이다.
한 케이블 TV에서 최근 사마의와 관련된 드라마를 예고하면서 올린 자막 문구가 눈에 띄어 유심히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의 일생이란 그저 살고 죽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 있어야 한다.”
메시지가 있다. 인생을 살되 생각 없이 살 것인가? 옳고 그름을 가리며 살 것인가, 묻고 있다.
역사를 계속 반추하면 들려주는 교훈이 있다. 대의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은 권력 때문에, 재물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것을 수많은 사건을 통해 들려준다. 가깝게는 MB, 박근혜 정권 9년이 반면교사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바꾸려 하지 말고 네 스스로 먼저 변하라’는 톨스토이의 성찰은 그래서 하나의 거울이다. 세상을 바꾸자고 할 때, 그가 먼저 그렇게 변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옳고 그름도 따져보아야 한다. 스스로도 비춰볼 일이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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