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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주차구역 '얌체 운전자' 민낯은

입력 2017.11.24. 06:15 댓글 0개

【대전=뉴시스】유효상 기자 =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가 무려 2200만대를 넘어서고 있다.

국민 절반 가까이는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서는 5번째로 차량이 많은 나라로 손꼽힌다.

문제는 자동차가 많은 나라로서 차량 예절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특히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대한 일부 얌체 운전자들의 거리낌 없는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뉴시스는 지난 16일부터 23일까지 8일 동안 장애인주차구역에서의 우리 주변 민낯을 집중 취재했다.

◇병원, 아파트, 공항 장애인주차구역에 비장애인이 거리낌 없이 주차

법적으로 아파트와 연립 등 공공주택, 공공기관은 물론 건물과 주차면을 갖고 있는 장소에는 일정 비율에 맞춰 장애인주차구역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는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오히려 많은 실정이다.

기자가 대전시 중구 대사동 충남대학교병원에서 2시간을 넘게 지켜본 결과 실제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는 장애인 운전자는 50%도 안됐다.

병원에 주차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버젓이 비장애인들이 주차를 해놓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보였다.

또는 장애인 보호자 주차표시가 있었지만 실제 장애인이 탑승하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된 한 외국산 승용차의 경우 장애인 주차표시에 차량번호와 실제 자동차 번호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등록표지판은 기한이 있다. 그런데 기한이 지난 표지판을 붙이고 있는 차량도 있다. 물론 어느 누구도 단속을 하거나 제재하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지체장애인이 주차할 곳이 없어서 주차구역 앞에서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다른 시각장애인도 차량에서 내리지 못하고 보호자가 차를 돌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를 병원 주차관리팀에 문의한 결과 "지자체에서 단속할 일이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냈다.

기자가 살고 있는 대전시 서구 도안동의 한 아파트 장애인주차구역도 이웃간에 배려는 없었다.

밤 늦은 시간에 주차할 곳이 없으면 비장애인이 슬쩍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해놓는다. 그리고 주말에는 다음날까지 차를 이동하지 않는다.

이 아파트는 지하 2층까지 주차공간이 넉넉한데도 꼭 지하 1층에 주차하기 위해 장애인주차구역을 침범한다. 장애인 주민이 관리사무소에 이를 항의하자 "차 빼달라고 하면 우리 멱살을 잡거나 욕설을 하면서 난리를 친다"고 손사레를 쳤다.

실제 장애인 주민이 운전자에게 전화를 해서 정중하게 장애인주차구역에서 차를 이동해달라고 요청하자 "나도 정신적 장애인"이라며 뚝 끊어 버렸다.

청주국제공항 장애인주차구역은 넉넉한 면을 유지하고 있는 데도 항상 만석이다.

차량을 장기 주차해두고 멀리 떠나는 관광객들 때문이다. 이곳에서 장애인주차표시를 확인해 보았다. 장애인 표시가 없는 차량은 없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차량들이 있다. 장애인보호자용 표시를 부착한 차량들인데 과연 제대로 장애인과 탑승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주차표시에 쓰여진 차량 번호가 가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앞유리 장애인표지를 밑으로 내려 차량 번호를 볼 수 없도록 했다. 또 장애인 주차표시와 차량 번호가 다른 경우도 있다. 이 곳 주차관리원 역시 "우리 단속 권한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전시 서구 대형마트 주차장도 장애인주차구역에 일반인들의 주차가 만연하다. 특히 한 운전자는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하고 동반한 어린아이가 왜 여기에 주차를 하느냐고 묻자 "아빠가 다리 한쪽 절면서 걸어갈게"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까지 치밀었다.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하기 위해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자라나는 자식들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농담처럼 말하는 모습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득했다. 과연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남을 배려하고 올바른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교육시킬 자격이 있는 것인가.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는 비장애인은 누구일까

장애인주차구역에 버젓이 주차를 하는 비장애인 운전자는 놀랍게도 대부분 20~40대 사이 젊은층이다. 현대문명을 가장 예민하게 접하며 살고 있고,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하면 왜 안되는지 상식적으로 교육을 잘 받고 자라온 젊은 세대들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이같은 행동을 하는데 대해 놀라웠다.

또 왜 이 곳에 주차를 하느냐고 질문을 하면 "왠 상관이냐"고 짜증을 내거나 "내맘이다"고 내뱉는 등 부끄러움은 오히려 이를 지적하거나 지켜보는 이들의 몫이었다.

다음은 고가의 수입차를 타는 경우이다. 장애인주차구역 주차면이 일반 주차면에 비해 넓다. 다른 차량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욕을 먹거나 눈치를 보더라도, 심지어 과태료를 물더라도 장애인주차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여성 운전자들의 '모르쇠 눈치작전'까지 가세하면 정작 장애인들은 제대로 주차를 못하게 된다.

◇ 장애인주차구역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장애인주차구역은 장애인의 특권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배려입니다."

이 말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배려로 장애인주차구역을 이해해준다면 최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장애인의 특권으로 알고 시기와 질투를 하는 비장애인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 단속을 하고 있지만 단속인력의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과태료 시비로 행정업무가 마비될 정도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단속과 신고 등 강제조치만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대책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복지카드 전산칩과 연동해 장애인주차구역에 한해서만 자동차단기를 설치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이 들어가는 한계가 있다. 관공서의 경우 장애인주차구역 입구에 주차관리원이 복지카드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나름대로 그 기관, 건물별로 상황은 다르지만 지혜를 짜내면 장애인주차구역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온다.

대전시의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지자체와 공동으로 단속에 나서 적발을 하고 계도도 하지만 그때 뿐이거나 거센 항의에 직면하는 등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며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주차구역 하나만이라도 지켜준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지만, 서로 강력한 제재조치로 얼굴을 붉히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갈등처럼 비쳐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장애인 차량의 주차, 보행장애인 탑승 없는 주차와 같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불법주차, 주차표지 위변조 및 표지 양도·대여 등 부정사용, 주차방해행위 등을 단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yreporte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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