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박근혜와 계림동 할머니의 국선 변호인

입력 2017.11.21. 10:49 수정 2017.11.21. 16:59 댓글 0개
김나윤 법조칼럼 변호사(김나윤 법률사무소)

지난달 25일자 신문에 ‘법원, 박근혜 형사재판 변호 맡을 국선 변호사 5명 선정’이라는 머릿기사가 실렸다. 통상 국선변호인이라면 없는 사람을 위해 국가가 대신해서 변호사를 선임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 국민들은 의아해 했을 것이다. 아마도 “박근혜는 돈도 많은데 왜 국가가 나서 친절하게 변호사까지 붙여주지”라고 불만을 표시했음직 하다.

마침 국선 변호사로 활동 중인 필자에게도 그런 불만스러운 의문을 표시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최근 국선변호사건으로 배당받은 사건중 하나는 계림동에 사는 70대 고령의 할머니가 명예훼손죄로 고소돼 재판을 받은 사건이었다. 전쟁고아로 자식 둘을 일찍 떠나보내고 또 다른 자식 둘은 초등학교 졸업 후 소식이 끊긴 가난한 할머니였다. 할아버지도 20년 전 돌아가시고 지인의 도움으로 무허가 판자집에서 기거하며 살았는데 동네 노인분과 다툼이 있어 명예 훼손죄로 고소가 된 것이다. 박근혜와 할머니 두 사건을 비교해 보면 당연히 후자에는 국선변호인이 필요하다는데 동의 할 것이다.

형사법이란 국가의 강력한 권력이 작용한다. 그 강력한 힘은 고문을 통해 범죄인으로 낙인 찍기도 하고, 사형이라는 극형에 처하기도 한다. 이처럼 강력한 국가권력에 나약한 범죄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대항하기는 거의 불가능 하다.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나약한 범죄인이 최소한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이른바 국선변호인제도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선변호인을 모든 형사 피의자(피고인)들에게 할당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일정한 요건하에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규정에 의하면 필요적 변론주의라 하여 재판상 변호인이 반드시 있어야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사선으로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할 상황인 사람에게 법원은 직권이나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국선변호인 선임결정을 하게 한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적 약자 등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형사소송법 제33조), 피고사건의 중대성으로 인한 필요적 변호사건(형사소송법 제282조)인 경우, 재심사건의 특별한 경우(형사소송법 제438조), 군사법원의 경우 등 변호인이 반드시 필요한 사건은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관련 뇌물수수 및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 및 강요죄 등 18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282조 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에 해당해 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는 필요적 변론사건이다.

지난달 1차 구속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던 박 전대통령은 법원이 새로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구속기간이 연장되자 이에 반발해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했다. 변호인단 사임 후 박 전 대통령은 새로운 변호인을 선임하지도 법정에 출석도 하지 않자 재판부가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재판을 정상화 한 것이다. 재판부 결정에따라 박근혜에게 국가 재산을 낭비하면서까지 국선변호인을 선임하는 것에 감정상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선 변호로 배당되는 사건에는 계림동 할머니처럼 국가 구조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 있다. 반면 가끔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 국선변호인으로 사건을 진행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서민을 쥐어 짠 반사회적 범죄에다 경제적 능력까지 갖춘 피고인이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국선변호인 제도까지 활용하는 것을 보면 철면피 같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재판으로 범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다. 답답하지만 공익의 한축을 담당하는 국선 변호사로서 밉다고 변호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더라도 박근혜 사건을 맡아 달라면 개인적으로는 정중히 사양하겠다. 민주주의 기본을 무너뜨린 그를 변호하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기도 하지만 계림동 할머니를 변호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김나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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