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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조성진, 낭만적이고 투명한…베를린필, 압도적이지만 해방감 안기는…

입력 2017.11.19. 22:56 댓글 0개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연주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PO)의 견고한 연주가 만나 상상력의 로망을 빚어냈다.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에서 조성진이 협연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건반의 시인(詩人)'이 굳건한 오선지 위에 써내려간 판타지였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라벨의 공상적인 관현악법에 스페인풍 음악, 재즈풍 분위기가 저마다 몽환적이고 부드럽게 얼굴을 내미는 곡이다.

이날 베를린필을 지휘한 사이먼 래틀이 에게 명명한 '건반의 시인'이라는 수식에 적합하게 조성진은 서정적인 터치로 그 얼굴들에 화색이 감돌게 만들었다.

제1악장이 끝난 이후 객석에서 뜬금없이 울려퍼진 스마트폰 벨소리로 집중력이 흐트러질 법도 했지만, 조성진의 담백한 연주는 빈틈이 없었다.

일부분에서 베를린필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묻혀 피아노 소리가 얕은 비명을 내는 듯도 했지만, 조성진 연주의 전체적인 투명함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이미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협연하며 베를린필 데뷔를 성공적으로 끌어낸 조성진은 이후 홍콩에 이어 이번 서울 공연까지 불과 2주 남짓 사이에 더욱 성숙한 연주를 들려줬다. 부상당한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을 대신한 무대였은ㆍ 처음부터 본인 무대인마냥 연주했다.

조성진이 스스로 성숙함을 더욱 증명한 자리는 홀로 앙코르 곡으로 들려준 드뷔시의 '영상 1집' 중 '물의 반영'(Reflets dans l’eau)이었다. 지난 17일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된 조성진의 새 앨범 '드뷔시'에도 실린 곡이다.

조성진은 베를린필과 연주한 라벨, 홀로 연주한 드뷔시로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들의 진짜 얼굴을 꺼내보였다. 서정적인 정서를 오롯하게 드러내는 투명함이 돋보였다.

래틀은 조성진이 '물의 반영'을 연주하는 내내 연주자석 뒤편에 앉아 이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조성진이 연주를 끝내자 만족스러운 듯 단원과 유쾌하게 짧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성진은 래틀을 비롯해 베를린필 단원 그리고 객석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였다.

베를린필은 전설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1984년 처음 내한공연했다. 2002년 래틀이 음악 감독을 맡은 이후 2005년, 2008년, 2011년, 2013년 한국 공연을 펼쳤다. 이번이 총 여섯 번째, 래틀과는 다섯 번째 내한공연이자 4년 만의 내한공연이었다.

내년 베를린필을 떠나는 래틀과 함께 하는 마지막 아시아 투어인 이번 연주에서 이들은 조성진 이슈를 제외하고도 명불허전의 명연을 보여줬다.

1부에서 들려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은 긴장감을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는 래틀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일품이었다.

화룡점정은 2부에서 들려준 브람스 교향곡 제4번. 저돌적이면서도 과하지 않게 절제미를 갖춘 오케스트라의 질주는 스포츠카의 폭발력과 고급 세단의 우아한 정교함을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호른이 빛났던 제2악장은 엄숙함이 밀려들어왔다. 제3악장은 순간 순간 놀랄 정도로 객석을 압도하는 웅장한 사운드가 빛났는데 래틀의 따뜻하고 자유분방한 해석은 오히려 해방감을 안기는 놀라운 묘를 발휘했다. 제4악장이 끝나자 기립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클래식 업계 안팎으로 관심이 컸던 공연이었던 만큼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 등 유명 인사가 대거 객석에 앉았다. 아시아 투어의 서울 마지막 공연인 20일 같은 장소에서는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의 곡으로 베를린필이 그녀에게 위촉한 '코르스 코르돈'(현의 춤)이 국내 초연된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도 함께 선보인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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