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재화(財貨)

입력 2017.11.19. 12:49 수정 2017.11.19. 16:21 댓글 0개

돈이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흔히 반 우스개소리로 ‘돌고 돈다고해서 돈’이라고 답한다. 돈의 어원을 짐작하기 어려운 만큼 돈이 ‘돈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는 민간 어원을 적용하면 틀리지 않다. 국문기록이 시작된 이래 어형의 변화 없이 줄곧 돈이라고 표기됐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자어로는 전(錢)이라 한다. 1527년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부터 이를 ‘돈 전’이라 읽었다. 조상들이 ‘돌고 돈다’해서 돈이라 표기하고 부른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랄 만한 일이다.

돈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돈의 위력을 강조하면서도 못마땅하게 여기며 경계하고 있다. ‘돈이 양반’ ’돈이 장사’등은 돈의 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이 많으면 장사 잘 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는 말도 있다. 사람의 능력 보다는 돈이 중요하게 된 세태를 지적하고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거나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속담은 돈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이 때문에 세상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은근히 꼬집고 있다.

‘돈에 침 뱉을 사람 없다’는 말처럼 돈을 좇기도 하지만,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존경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특히 돈을 모으기만 하고 쓸 줄을 모르는 사람을 구두쇠, 자린고비 등으로 부르며 비난과 풍자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돈은 벌기 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더럽게 벌어도 깨끗하게 써라’,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격언도 돈 쓰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는 말은 한발 더 나아가 돈 보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경구다.

돈의 막강한 힘을 실감케 하는 백미는 돈이 저승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고 믿는 점이다. 굿을 할 때 저승차사 노릇을 하는 무당에게 돈으로 인정(人情)을 쓰는 일이나 종이돈을 마련해 불에 태워 저승에 보내는 행위 등에서 이같은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도 좋은 예다.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누이를 제사지내면서 노래를 부르자 문득 광풍이 불어 종이돈을 서쪽으로 날아가게 하였다. 서쪽은 서방정토를 뜻한다. 죽은 뒤라도 좋은 곳을 가기 위해 돈을 저승에 보내는 무속의례가 깃들어 있다.

물론 ‘돈은 스무명 정도의 웅변가 역할을 한다’고 말한 세익스피어나, ‘평범한 인간에게 돈은 타락의 매개가 되지만,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에게는 유력한 연장이 된다’고 정의한 모파상처럼 돈에 대한 긍정적인 명언들도 많다. 그래도 ‘재화는 거름과 같아 쌓여 있을 때는 냄새를 피우지만, 뿌려졌을 때는 대지를 기름지게 한다’는 톨스토이의 말이 마음에 가장 와 닿는다. 겨울이 문 앞에 서성이니 더욱 그렇다.

이종주 논설실장 mdl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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