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감수성, 여성감독 그리고 여성영화제
입력 2017.11.17. 16:31 수정 2017.11.17. 16:42 댓글 0개요즘처럼 여성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최근 박스오피스 1위를 하기도 했던 영화 ‘VIP’의 박훈정 감독에게는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거 아니냐는 질문이 인터뷰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여배우 폭행 사건 이후 영화제작환경에서의 성평등 문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솔직한 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동안 우리끼리 변방을 울렸던 이야기에 영화계 아니 사회전체가 관심을 쏟고 있다.
‘VIP’에 나오는 여성캐릭터는 이미 죽었거나 곧 죽을 예정이다. 영화 초반에는 소녀가 납치되어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필요이상으로 길고 집요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500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한 ‘청년경찰’ 역시 여성을 피해자로만 그림으로써 남성의 성장을 위해 여성캐릭터를 소모적으로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남자들만 우르르 나와서 여성을 강간하거나 죽임으로써 그들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영화들 일명 남자영화, 한국영화가 장르의 다양성을 갖지 못하고 남성중심의 서사만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해왔다. 점점 그 강도가 높아져서 영화는 가히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그리고 있다.
여성을 향한 폭력적 시각과 혐오, 여성을 묘사하고 배제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이 제기 된지는 오래이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화계에는 벡델 테스트가 있다.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서사가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기 위해 고안한 성평등 테스트이다. 이름을 가진 여자가 2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그 대화 내용이 남자와 관련되지 않을 것. 최근에 본 영화중에 이 테스트를 통과할 만한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
젠더 감수성만으로 영화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편협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다. 젠더 감수성만이 아니라 젠더 감수성도 영화제작단계부터 고려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사회전반에 높아진 젠더의식과 관객들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건강한 사회의 징표로 생각한다. 영화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계가 건강한 다양성을 회복하려면 단연코 여성감독의 작품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여성감독의 비율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
‘제8회 광주여성영화제’가 오는 22~26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ACC)과 유·스퀘어 동산아트홀에서 열린다.
올해는 ‘지금, 페밍아웃!’이라는 주제로 모두 10개국 42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페밍아웃’은 페미니스트와 커밍아웃을 합친 말로, 스스로 여성주의자임을 밝히는 선언을 뜻한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지금, 우리가 선 곳 그 자리에서 당당하고 다양하게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해 사회 곳곳에 팽배한 성차별적 상황들을 스스로 찾아내고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은 세상,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지금 시작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개막작은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다. 생리와 생리대의 역사를 각계각층의 인터뷰와 애니메이션으로 흥미롭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언제부턴가 입밖으로 꺼내드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느꼈던 생리를 담담하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작품이다.
광주여성영화제는 여성감독을 지원하고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관객이야기공모전’을 시행하여 왔고 당선된 작품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감히 말하자면 여성영화제의 이러한 노력이 지역영화계의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에 한몫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작년 미혼여성의 결혼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 ‘결혼별곡’ 제작에 이어, 올해는 비정규직 여성의 가정과 직장에서의 고민을 담은 영화 ‘선택(가제)’를 제작중이다. 또한 여러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창작되고 있고 여성영화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8회까지 함께 만들어 온 안목 있는 관객들 덕분이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뜨겁게, 11월 8회 광주여성영화제에서 다시 만나기를 갈망한다.
- "아시아 문화, ACC 박물관에서 간접 체험해요" 2023년 아시아 공예 레지던시 프로그램 워크숍 모습.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아시아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은 운영해 눈길을 끈다. ACC는 아시아문화박물관의 전시, 소장품 및 아카이브를 연계한 교육으로 시민 곁을 찾아간다.ACC는 다음달부터 6월까지 아시아문화박물관 문화교육실5에서 인도네시아 바틱과 동아시아 출산의례를 주제로 'ACC 박물관 교육'을 운영한다.먼저 '작가와 함께하는 워크숍: 인도네시아 바틱'에서는 아시아문화박물관 상설전시인 '몬순으로 열린 세계: 동남아시아의 항구도시'와 연계해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기법인 바틱에 대해 알아본다.이번 워크숍은 지난해 아시아 공예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를 다녀온 이혜미, 오세린 작가가 함께한다.인도네시아의 전통과 자연환경을 생생하게 담은 시간으로 구성했으며, 바틱 직물을 활용해 오브제도 만들어 볼 수 있다. 워크숍은 다음달 11일, 5월 9일, 5월 23일, 6월 27일 4차례 진행된다.'동아시아 출산의례' 교육 포스터.이어 아시아 출산의례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의 생활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강의도 열린다.이번 교육에서는 동아시아 과거 전통문화와 근현대에 이르는 민간문화를 포함해 출산의례를 알아보는 의식주 문화와 생활풍습에 대해 조명한다.교육은 총 3회 구성돼 있으며, 지난해 아시아플러스 연구진이 강사로 참여한다.다음달 16일에는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원장이 '성과 속의 세계를 넘나드는 출산의례'를 주제로 강의를 펼친다.오는 5월 28일에는 김효경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 특별연구원이 '한국 출산의례와 설화 속 삼신이야기'를 주제로, 오는 6월 25일에는 한남수 선문대학교 교수가 '붉은 색의 두 얼굴, 중국의 출산의례'를 주제로 강의한다.ACC가 아시아문화박물관 상설 전시실을 개편해 지난 1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몬순으로 열린 세계: 동남아시아의 항구 도시 전시'에서는 계절풍을 따라 동남아시아의 해상 실크로드에서의 교육과 문화교류, 항구도시에서 만들어낸 고유한 문화 쁘라나칸과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화려한 그림과 조각, 신성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금속공예품, 열대의 문양을 품은 옷과 직물 공예, 자연에서 채득한 라탄으로 만든 목공예 등 동남아시아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그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신화와 신앙, 집과 옷, 이색적인 일상용품을 만나 볼 수 있다.'ACC 박물관 교육' 참가비는 무료로, 신청은 ACC 누리집(www.acc.go.kr)에서 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ACC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아시아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아시아문화박물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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