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르포] 불안에 떠는 포항 지진피해 주민들

입력 2017.11.16. 15:04 수정 2017.11.16. 15:05 댓글 0개
최대 피해 대성아파트는 주민 출입통제

【포항=뉴시스】김난영 홍지은 기자 = "친구들이 울면서 엄마를 찾았어요. 선생님들도 무서워서 울었습니다."

16일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지진 피해주민 배대윤(15)군은 지진이 나던 순간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지진을 감지하기 직전 재난문자를 먼저 받은 배군이 '설마'라고 생각하던 찰나 곧바로 큰 진동이 교실을 흔들었다고 한다.

배군은 "곧바로 운동장으로 대피를 한 뒤에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4~5통 전화를 걸었는데 연락이 안 됐다. 신호가 안 가더라"라고 불안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배군이 다니는 흥해중학교는 무너진 벽돌이 튀어 교실 일부 창문이 깨지고 교실에 비치된 사물함이 밀리며 집기가 쏟아지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단독주택인 배군의 집 담벼락에는 이번 지진으로 수직으로 금이 생겼다.

지진 직후 일단 집으로 돌아갔던 배군은 밤새 여진이 찾아들자 불안한 마음에 이날 오전 10시께 대피소를 찾았다. 배군은 "트라우마가 심하다. 약간이라도 흔들리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도저히 집에 못 가겠다"고 불안함을 호소했다.

임시대피소로 지정된 체육관에는 배군처럼 집에 들어가기 무섭다며 두려움을 호소하는 피해 주민이 부지기수였다. 뿐만 아니라 걸어 다니며 느껴지는 작은 진동에도 몸을 떨며 놀라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심지어 피해등록 업무를 보고 있는 흥해읍사무소마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과 1층 벽면에 균열이 생기면서, 이를 목격한 피해 주민들은 한층 더 불안에 떠는 모습이었다. 읍사무소 직원들도 여진으로 인한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어머", "아이구"라고 중얼거리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대피 주민들 중에는 본인이나 가족에게 지병이 있음에도 약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대피소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흥해 약성리에 거주 중인 이영한(59)씨는 "아내가 중증 환자라 약을 먹는데 챙기지도 못했다"며 "물건이 하나 핑 날아오더니 10초 만에 모든 게 흔들렸다. 아예 집으로는 못 들어가겠다"고 했다.

자신을 암환자라고 밝힌 흥해 남성리 주민 J(69·여)씨는 "간 쪽에 암이 재발해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다. 내일 모레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집은 물로 차 있고 현관 앞에 금은 가 있고 참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작년에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을 한차례 겪었지만, 피해 주민들이 체감하는 지진의 강도는 이번 포항 지진이 훨씬 더 컸다.

흥해 옥성리에 거주 중인 박지숙(47·여)씨는 "앞전 지진 때도 집에 있었는데 이번엔 '집이 내려앉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을 느꼈다"며 "그땐 창틀이 흔들렸는데 이번엔 집안이 뒤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또 "큰 지진이 또 온다고 해서 걱정"이라며 "빨리 지진이 끝났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 중엔 그나마 안전하다는 남구로 피신하거나 다른 지방의 시댁 등으로 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가장 피해가 큰 곳으로 꼽히는 대성아파트는 오후 2시 현재 주민들의 출입이 아예 통제돼 있다. 대성아파트 주민인 유지윤(20·여)씨는 "아파트가 거의 기울어졌다. 전체가 통제가 되고,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전날 지진으로 피해가 집중됐던 흥해 거리는 이날 오전엔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옥상 담이 무너지며 차량 위로 떨어져 큰 피해를 낳은 그린스토아 마트 인근도 낙석 등이 모두 치워졌다.

각자의 가족, 친척, 친지들과 대피소에 모여 앉은 피해 주민들은 끼니가 되자 구호물품으로 제공된 컵라면이나 국밥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러나 거리가 정리되고 대피소에서 차분히 끼니를 해결하면서도 피해를 겪은 주민들의 일상엔 이미 불안감이 깊숙이 스며든 모습이다. 배조차 고프지 않은 듯 담요를 덮고 눈을 감은 사람들과 지친 모습으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뒤섞인 대피소에서는 종일 혼란하고 허탈한 분위기가 흘렀다.

포항 장성동의 부모님 댁을 찾았다가 지진을 겪은 김가영(30·여)씨는 "밤 9시에 집에 앉아있으니 다시 지진이 시작되는 것 같아 집에서 관리하는 비닐하우스로 뛰쳐나갔다. 거기서 잠을 잤다"며 "포항에서는 일상이 너무 불안해졌다. 남편은 부모님을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오자고 한다"고 털어놨다.

imzero@newsis.com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