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곽정숙, 사람의 그림자

입력 2017.11.13. 18:47 수정 2017.11.13. 18:59 댓글 0개
조덕진의 어떤 스케치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곽정숙, 그녀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한 해가 훌쩍 지나고 몇 계절이 또 지나고 있다.

한 잎 바람처럼 떠나간 그녀가 지상으로 다시 걸어나오고 있다. 잊지 않으려는 이들의 그리움에 행복한 소환을 당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단 한 번도 지상을 떠난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 땅의 아프고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그녀는 위로와 격려, 지지, 따듯한 보루라고 해도 무방하다. 작은 키, 자그마한 몸에 말씀도 가만가만한 그녀는 선한 눈빛에 입가 맑은 미소를 붙박이로 달고 살았다.

기억되는 그녀는 ‘정의 앞에서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분이었지만 한없이 따듯했고, 강자한테는 강하지만 약자한테는 한없이 약했던’ 사람바보였다. 자유롭지 못한, 여리디 여린 체구는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약자를 위해서라면 단호하고 거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말년엔 장애인인권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에 진력했다. 그녀가 국회의원으로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재직시절은 물론 현장으로 돌아와서도, 병석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법안 발의에 마지막 한 숨을 더했다. 국회에 나가 장애인을 위한 법안을 만들어야한다고 국회로 ‘등떠밀어’ 내보낸 때문은 아닌지, 남은 이들은 미안함과 그리움을 배로 안아야했다.

그녀는 이 사회가 ‘장애인’을 사람과 가르고 사실상 집이나 시설에 강제격리시켰던 70∼80년대부터 장애인이 아닌 ‘사람’의 사회적 소통과 활동을 위한 기반마련에 나섰다. 선교의 이름으로 장애인들의 교감 무대를 만들고 여성장애인들의 사회적 활동을 위한 직업교육 등을 전개했다. 그렇게 장애인의 벗으로 약자들의 언니, 누나, 엄마로 전사처럼 현장을 누볐다. 장애인인권 법안 마련 등 인권향상을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현안’에 밀려 그녀의 인권법안은 빛을 보지 못하고 후배들의 숙제로 남겨졌다.

그녀가 지난 해 봄 한 잎 이슬처럼 스러지자, 남은 이들이 뭉쳤다. 그녀를 기억하고 나섰다. ‘곽정숙 기념사업회’가 꾸려졌다. 지난 가을 발족식을 갖고 그녀의 유훈을 다짐했다. 그녀가 추진해온 장애인 인권과 복지향상. 여성장애인 사회진출은 물론 그녀의 이름을 딴 ‘곽정숙 인권상’도 제정했다.

지난 주말 광산구 전통문화연구회 얼쑤 마당에서는 ‘곽정숙 기념사업회’ 회원(후원) 한마당이 열렸다. 그녀가 꿈꾸고 만들어가고자 했던 세상을 남은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의 자리이자, 외로운 세상을 향한 연대의 선언의 자리이기도 하다.

곽정숙 기념사업회는 내로라하는 이의 후광이나 사회적 명성을 자랑하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오롯이 그녀의 삶을 따른다. 그녀와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의 손길 하나 하나, 마음 한 자락 한 자락을 더했다. 가난하지만 풍성하고 요란하지 않지만 그윽하고 그리움은 깊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받들어온 그녀의 삶의 그림자가 오롯이 투영된다고나 할까.

그녀는 떠났지만 여전히 우리사회에 함께하고 있다. 장애인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그녀의 삶은 광주 뿐아니라 한국사회 안에서 그렇게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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