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시(習) 황제

입력 2017.11.13. 15:27 수정 2017.11.13. 17:13 댓글 0개
김영태의 약수터 논설주간

황제(皇帝)는 제국의 군주를 말한다. 작은 나라의 임금이나 특정 지역을 관할하는 제후와 구별된다. 어원은 중국의 신화시대와 역사가 시작된 시기를 다스렸던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다. 삼황의 ‘황’, 오제의 ‘제’를 따 만들어 낸 최고 군주의 명칭이다.

중국의 주(周)나라 말기(전국시대·戰國시대). 일곱 제후국(칠웅·七雄)이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격렬하게 다투었다. 그러다가 진(秦)나라가 제(齊), 초(楚), 연(燕), 위(魏), 한(韓), 조(趙) 등 나머지 육국(六國)을 차례로 병탄해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BC 221년).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제국을 세운 임금, 영정(瀛?政)은 장양왕(자초·子楚)의 아들이었지만 한편으로 여불위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항간의 소문도 있었다.

전례없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영정은 신료들에게 그에 걸맞는 군주의 칭호를 연구해 보라는 명을 내렸다. 승상 이사(李斯) 등이 태왕(太王) 등 몇가지 칭호를 제안했지만 맘에 들지않아 직접 삼황오제에서 ‘황제’라는 명칭을 취했다. 진시황(秦始皇)이란 제호(帝號)는 그런 파천황(破天荒)으로 생겨났다.

통일제국의 황제가 된 그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자 전국 각지를 순행하면서 가는 곳 마다 찬양비를 세웠다. 만리장성 축조와 아방궁, 여산궁 등 대규모 토목공사에 수많은 인력을 징발하고 과중한 세금 징수에 나섰다. 그런가 하면‘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희대의 조치를 통해 고래(古來)의 각종 문서와 기록들을 불태우고 수많은 유학자·유생들을 땅에 묻어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여러 폭정·억압에 따른 부정 평가에도 진시황의 영걸(英傑)스러움은 긍정 평가의 대상이기도 하다. 2천여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의 자부심이요, 내재적 닮음을 향한 표징이다. 중국의 영어식 표기인 차이나(China)를 진(秦)나라에서 따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시(習)황제’로 불리우게 됐다. 지난달 24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후다. 당장(당헌·黨憲)에 그의 사상이 삽입되고, 당의 지도 이념이 되는등 명실상부한 ‘1인 체제’를 구축한데 따른 것이다. 그리고 지난 9일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중·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자금성은 명·청시대 500여년 이상 황제가 최고 권력을 행사하던 중심지였다. 그 성내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건복궁(建福宮)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만찬을 베풀었지만 시진핑 역시 황제에 다름없었다.

‘강한 중국’을 표방하고 ‘위대한 중국의 부활’을 외치며 현대판 황제의 반열에 오른 그의 향후 치세가 남·북한,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 정세와 맞물려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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