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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공수, 5·18 때 광주교도소에 시신 12구 가매장했나, 암매장했나'

입력 2017.11.08. 14:27 수정 2017.11.08. 14:31 댓글 0개

【광주=뉴시스】 배동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3공수여단은 옛 광주교도소 내 희생자들의 시신 12구를 가(임시)매장 했을까, 암매장 했을까?

옛 광주교도소 부지 내 암매장 추정지에서 배관 8개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가매장과 암매장의 차이가 유해 흔적을 찾을 수 있는지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8일 옛 광주교도소 내 암매장 발굴 작업이 사흘째 진행되고 있다.

교도소 북측(담양 방면) 담장에서 3~5m가 떨어진 바깥쪽, 순찰로로 사용했던 인근 땅을 집중적으로 발굴 조사하고 있다.현재 가장 유력한 암매장 추정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교도소에 주둔했던 3공수여단 본대대장 김모 소령이 1995년 검찰 조사에서 남긴 '12구를 묻었다'는 진술과 기록이 이 곳을 암매장 장소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김 소령은 검찰 조사에서 '암매장'이 아닌 '가매장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남대학교에서 광주교도소로 이동하는 호송하는 과정에 사망한 3명을 포함해 제가 광주교도소에 있는 동안 12구의 시체를, 사병 5~6명과 함께 가마니로 2구씩 덮어 가매장한 일이 있다'고 진술했다.

가매장과 암매장은 무슨 차이일까.

작가 황석영(74)이 공동 집필자로 참여한 5·18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개정판에는 '항쟁 기간 중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사망자를 우선 일정 장소에 매장한 뒤 표시해뒀다, 나중에 확인 절차를 거쳐 가족에게 인계한 경우'를 가매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암매장'은 '야산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시신을 묻고 아예 흔적조차 없애버려 사망사실 은폐 의도가 뚜렷한 경우'로 정의했다.

계엄군의 은폐 의도에 따라 가매장과 암매장을 나눴다. 이 기준에 의하면 김 소령이 묻은 시신 12구는 암매장에 해당한다.김 소령의 검찰 진술이 없었다면 시신 12구의 존재는 영원히 묻힐 수밖에 없었다.

은폐를 목적으로 했다면 시신을 묻은 위치가 깊을 수밖에 없다. 기념재단이 1~1.5m 깊이에 시신을 암매장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 시신을 묻은 깊이 차이를 '가매장'과 '암매장'의 기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언제든지 확인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표시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김 소령의 검찰 진술에서 그가 왜 '가매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가매장'은 다른 곳으로 시신을 옮기기 전 임시로 묻어뒀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시신이 이미 옮겨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소령이 시신 12구를 1m가 못 미치는, 낮은 높이로 가매장했다면 발굴 장소에서 발견된 8개의 배관은 암매장된 유해의 흔적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이날 추가로 발견된 배관 3개는 최고 1m 깊이에서 발견됐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1980년 이후 통신 배관과 상하수도 배관, 도시가스 배관, 철제 울타리 설치 등 많으면 4번 가량 이 곳에서 공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12구의 시신을 낮게 파 묻었다면, 이미 유해의 흔적들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5·18 당시 교도관들은 '군인들이 시신과 중환자들을 헬기와 차량에 싣고 교도소 밖으로 나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시체 수거반이 80년 6월 가매장 시신 발굴을 위해 광주에 내려갔다는 기록도 있다"며 "시신을 '가매장'한 뒤 다른 곳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5·18 당시 항공대 기록이 필요하다. 진실 규명을 위해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양래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당시 3공수 간부가 남긴 증언과 약도를 바탕으로 암매장 유해를 찾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배관이 갖는 의미보다, 유해의 흔적을 찾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gugg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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