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월레 소잉카가 한반도에게

입력 2017.11.06. 16:42 수정 2017.11.07. 18:36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거장 고은과 월레 소잉카가 광주에서 '아시아의 아침'을 노래했다.

지난 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특별 대담을 갖고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의 가능성 등 문학에 대한 싶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문학을 '권력에 대한 강력한 안티테제'라고 말하는 소잉카는 앞선 기조강연에서 "한반도 상공에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점에 최초의 아시아 문학축제가 열린건 아주 시의적절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문화를 불러들이는 보편적 플랫폼, 독트린도 없고 서로를 압도하지도 않는, 여러 아시아 문화를 모으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지평을 넓혀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처럼 전략적 위기가 응집된 국가는 없다"며 "작가들이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고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유지해가기 바란다"고 권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아프리카 문인들은 매우 어지러운 정치적 지형에서 '절망하지 않기 위해'글을 쓰고, 이 글쓰기를 통해 '개인이 완전히 정치적 상황에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이밖에도 '해돋이가 당신의 등불을 끄게하라' '경계를 넘어서라'(소잉카), '시인의 삶이 세속적으로 밑바닥이지만 시는 항구적으로 별처럼 존재한다' '관계가 존재를 규정한다' '삶의 위기와 문학의 위기는 정비례 한다'(고은) 등등, 삶과 문학에 대한 깊은 통찰과 시적 표현은 대중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무엇보다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절망도 하지 않는 두 거인의 시선은 '절망'과 '좌절'을 강요받는 문단 뿐아니라 대중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안겼다.

다만 이 귀하고 소중한 무대가 문단 내의, 문화전당의 '행사'로 한정된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문화전당이 '시민축제'라고 선언했지만 정작 평일에 행사가 진행돼 학생이나 관심있는 직장인들의 참가는 어려웠다. 대담이 진행된 토요일 오후 문화전당 컨퍼런스 홀도 문인과 언론인이 주를 이뤘다. 세계적 거장의 목소리, 격려와 위로와 다짐이 절실하거나 요구되는 젊은 학생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계 지성사에 빛나는 거장과의 만남은 홍보가 아무리 지나쳐도 부족하다고 할 밖에.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고은은 독재정권 시절 사회적 발언과 참여로 옥고를 치렀다. 1980년 내란음모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수감됐을 때 '사람이 그리워' 만인보를 구상했다. 평범한 이웃부터 민주화운동가 등 5600명이 넘는 인물을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연작시집 30권으로 노래했다. 나아지리아 태생의 소잉카는 아프리카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1986년)자로 내전 중단을 촉구하는 등 급진적인 글로 권력에 밉보여 옥고를 치렀다. 망명중에 반역죄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정권교체로 1999년 고국으로 귀국했다. 지난해 트럼프가 당선되자 항의 표시로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는 등 세계를 향한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삶 자체가 가르침이고 한편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와 21세기를 넘나들며 문학적 성취 뿐아니라 현실사회에서 문학의 힘을 믿는, 행동하는 문인들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아시아 문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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