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도시로 변화하는 마을 중심에서 정체성을 찾다

입력 2021.11.25. 19:24 댓글 0개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40> 동명로
이색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동리단길'의 야경. 골목골목마다 기존에 있던 구옥들이 리모델링 과정을 거치면서 색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있고,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적 생태계는 완전한 성체로 성장하기 위해 수많은 세포들이 분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직과 기관을 구성하고 진화를 통해 자신만의 색을 나타낸다.

도시도 이러한 생태계와 다르지 않다. 도시는 역사와 문화가 오랜 시간을 지속하며 그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현대의 도시는 정책에 의해, 자본가들에 의해, 또는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문학적 감성에 의해 각기 다른 형태로 변화하며 장소가 가진 기억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고리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6년 전 동구 장동의 사무실을 떠나 타 지역에 사무소를 두다가 2년 전 동명로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6년의 세월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그간의 시간이 가져온 변화는 필자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이곳 동명로에도 적용됐다. 동명로는 수많은 변화가 이루어지는 그 중심에 서 있는 듯 시시각각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6년 전 동명로는 2015년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영향을 받아 도심재생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으며 '동리단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수많은 구옥들이 리모델링되어 다양한 식당들과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놀이터로 변모하고 있었다.

동명로 메인가로축의 남측면. 동명교회가 개축되면서 새로운 대형건축물의 등장과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남측 동명로의 모습.

필자의 사무소는 지산사거리에서 농장다리를 따라 내려오는 동명로의 메인 가로면에 접해있다. 은행나무 가로수를 따라 이어지는 동명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연결되는 동명로와 푸른길을 따라 주택재개발이 연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동명로가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이어지는 동명로는 격자형 도로체계 안에 동명교회와 서석교회, 중앙도서관, 서석초등학교 등으로 이뤄진 대형 매스들 사이에 금남로 황금기에 지어진 고급주택들과 끊임없는 리모델링 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식당과 카페로의 변화가 끊이지 않는 구옥들이 기존의 장소성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행환경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보차가 혼용되어 있던 동명로 거리에 보행로를 조성하느라 떠들썩하다.

반면 반대방향으로의 동명로는 푸른길 공원이 도심의 공원으로 개발되면서 일부는 주택재개발 사업을 통해 거대한 매스의 아파트가 되며 예전의 동명동은 기억에서 지워진 채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찻길을 따라 좁은 골목길에 경계도 모른 채 지어져 이형의 도로에 수많은 막다른 도로를 만들어가며 지어졌던 구옥들은 생기를 잃은 채 비워지거나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다.

동명로 메인가로축의 북측면. 막다른 골목 사이사이에 지어진 소규모 주택들이 변화하는 동명로의 개발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비워지거나 철거 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이렇듯 동명로 메인 가로축은 주거지역에 둘러싸인 근린상업지역으로 10년 전만 하더라도 2~3층의 저층 상가들이 북측의 소규모 주택들과 도로의 경관을 이루며 이질감 없는 스케일을 이루고 있었으나 최근 동명동과 푸른길 공원이 활성화 되면서 4층 이상의 고층건물들이 도로에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필자의 사무소도 4층 규모의 매스로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도시경관의 한 축을 형성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막상 건물 안에서 들여다 본 도시의 모습은 앞과 뒤가 달라 개발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극명한 현실감을 보여주는 듯 했다. 큰 규모의 건축물로 인해 작은 주택들에게 주는 위압감이 어쩌면 그들에게 마을이 아닌 도시화가 되어가는 이 동네를 떠나고 싶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과 집이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필자의 건축적 가치를 다시금 돌이켜 보며, 다만 위로가 되는 것은 동명로의 경관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 어쩌면 새로운 동명로의 미래에 한 치정도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과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이현조 리가온건축사사무소 대표

이현조 건축사는

물리적 온기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느끼는 사용자의 감성이 봄날처럼 따뜻해지는 건축을 추구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여수시민회관 리모델링, 빛고을안전체험관, 한국트로트가요센터 등이 있으며 순천어울림센터, 벌교문화복합센터 등 건립사업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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