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100년 일기장

입력 2021.11.24. 15:55 수정 2021.11.25. 08:31 댓글 0개
유지호의 약수터 디지털편집부장 겸 뉴스룸센터장

지난 주말, 안방 책장에서 10여 전 썼던 낡은 취재수첩을 꺼냈다. 스마트폰으로 보던 사랑방 뉴스룸 사이트에서 발견한 익숙한 이름이 호기심을 자극해서다. 2018년 돌아가신 고(故) 김봉호씨 이야기였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0년 8월 중순의 한 여름날이 소환됐다. "벨 것도 없는 디 멀라고 신문에 낼라고허요."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하며 손사래쳤다. 쓰잘데기 없는 개인사가 알려지는 게 싫다는 이유에서다.

선배 사진기자와 광산 하남동의 한옥 자택으로 찾아갔다. 도심의 고층 아파트와 신축 건물들 사이에서 더욱 특별해 보였던 기와집이었다. 1946년 3월에 지어져 2000년 5월 광주시문화재자료 25호로 지정됐다. 전형적인 농촌가옥으로 보존이 잘 돼 있는데다 건축학적 특이성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서다. 3대째 살아온 이 집에서 그는 당시 57년이 넘도록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거듭된 설득에 마음을 열었다. 안채에 있는 다락에서 일기장 74권을 보물처럼 꺼내 왔다. 50년대 만들어진 빛바랜 공책부터 80∼90년대 대학노트까지 다양했다. 27년생인 그는 일제시대에 하남공립심상소학교, 송정공립공업학교를 다녔다. 해방 뒤 조선대학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농사를 지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인 52년 10월 24일이다. 날씨와 수확량, 인부의 품삯을 기록한 게 시초가 됐다. 집에 찾아온 손님·친구 이야기, 주요 일과는 물론 국내·외 큰 사건, 대선·총선 등 정치뉴스까지 다양하게 다뤘다. 일기 덕을 본 적도 있었다. 이웃과 토지거래 과정에서 잘못 부과된 세금을 감면 받은 것이다. 일기장에 남아 있던 메모 덕분이었다. 그의 일기장은 6·25 전쟁 이후 민초들의 삶의 기록이었다.

지난주 광산구청이 그의 일기장에 대해 기록화 사업에 착수했다는 내용은 반가웠다. '벨 것도, 쓰잘데기도 없는' 일기가 행정기관에 의해 문화재·기록학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판단을 받아서다. 꼿꼿한 그의 한옥처럼 아날로그 기록에 대한 디지털·모바일 시대의 평가와 가치 부여는 더욱 도드라진다. 그는 당시 "대를 이어 100년의 세월을 일기장에 담는 게 꿈"이라고 했다. 기록·수집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쬐끔하고 거시기(사소)한 일도 기록허는 습관이 중요하지라. 책자나 기록 하나하나가 모태져서 역사가 됭께요."

유지호 디지털편집부장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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