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37년 기다려온 의혹, 하루빨리 풀어야한다

입력 2017.11.02. 17:56 수정 2017.11.03. 10:40 댓글 0개
도철원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1본부
도철원 사회부 차장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망월동의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오월가 중)

5·18민주화운동 당시 숨졌던 시민들에 대한 암매장 의혹들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더불어 널리 알려진 민중가요 ‘오월가’의 가사처럼 트럭에 싣고 어디론가 사라진 시민들에 대한 오랜 의혹을 해소할 광주교도소 발굴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 속에 광주교도소로 끌려갔던 시민들 중 사망한 이들이나,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이들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소문만 돌았지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 ‘수많았던 넝마주이들이 그날 이후로 다 사라졌다’는 말처럼 3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행불자’는 가족들이 신고한 이들만 해도 80여명에 달한다.

행불자 중 가족이 없는, 누가 신고해줄 이들이 없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행불자는 그 누구도 명확히 알지 못한다고 봐야 할 정도다.

이번에 발굴키로 한 옛 광주교도소는 암매장지로 가장 유력한 곳이다.

당시 군의 기록인 ‘광주사태 진상 조사’에는 ‘교도소 습격 사건’으로 민간인 27명(보안사 자료 28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 발견된 시신은 11구에 불과했다.

군 기록만으로도 16~17명의 행방이 묘연하다.

이들이 누구인지 신원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려 강산이 세번을 넘어 네번째로 변할 만큼 시간이 흘렀다.

당시 교도소에서 근무했던 일부 교도관들은 50여명이 숨졌다고 증언하고 있어 우리가 37년간 이름도모른채 찾지 못한 시민들은 40여명에 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줘야 할 이들, 희생자들이 이만큼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을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아직까지 가족을 찾지 못한 시민들과 그날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이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역사적인 발굴작업이 법무부의 잇딴 제동에 아직까지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다.

늦어도 지난달 말에 착수할 줄 알았던 발굴은 다음주로 미뤄졌지만 그마저도 명확치가 않다.

법무부의 승인이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이제는 오랜 기간 까맣게 타버린 가슴으로 살아와야만 했던,실종됐던 가족의 행방을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때다.

37년을 기다려온 이들, 모두 우리의 가족이자 같은 이웃임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한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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