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진정한 고수들

입력 2017.10.30. 17:30 수정 2017.10.30. 17:39 댓글 0개
김요수의 꾸브랑나브랑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본부장
김요수의 꾸브랑 나브랑

‘어이, 김 센! 삽자루가 부러졌어’. 부러진 삽자루도 뚝딱, 중학교 들어간 손자 책상 만들어달라고 해도 뚝딱! 옛날엔 손재주 좋은 사람 마을마다 꼭 있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김 센 아저씨도 집 짓는 일부터 꼬맹이들 나무인형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김 센’이라 부른 거는 아마 ‘선생’의 왜노므시키 말이 ‘센세이’니까 무슨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에게 붙였던 모양이다. 간혹 잘난 체하는 사람을 조롱할 때 성에다가 ‘센’을 붙이기도 했다.

‘저 집은 아이들이 있으니까 마당 넓은 광표네집 상하방에서 살믄 쓰겄고만’. 방 얻으러 오는 사람들의 성격과 삶을 살핀 뒤 살 집을 생각하는 복덕방 할아버지가 계셨다. 어렸을 때 이야기다. 집집마다 사정을 잘 아는 복덕방 할아버지는 궂은 사람이 방 얻을라치면 동네 버린다며 좀체 마을에 들이지 않았다. 지금 복덕방이란 말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관찰과 그윽한 성찰의 작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제목으로만 남았다.

큰 마을에는 대장장이가 있었다. 호미와 낫, 부엌칼은 물론이려니와 지붕과 기둥을 잇는 이음새를 만들어달라면 만들어주었다. 요즘 말로 하면 주문 생산을 한 셈이다. 텅텅 쇠 두드리는 소리는 가슴을 뛰게 했다. 망치보다 작은 마치로 두들기는 소리는 정말 신났다. 아마 음악에서 나오는 세마치장단이란 말은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불에 달궈진 쇠를 마치로 치는 소리처럼 경쾌한 음을 말하지 싶다.

마을 5거리에 ‘체 내는 집’ 있었다. 더부룩한 속이 오래 가거나 먹은 것이 막혀 숨이 턱턱거리면 사람들은 그 집으로 달려갔다. 손가락 끝을 칭칭 감은 뒤 검붉어지면 바늘 끝에 콧김을 쐬고 손가락 끝에서 피를 뽑았다. 등짝을 두드리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다가 입속으로 손가락을 쓱 집어넣어 꼬물거린다. 목구멍에 얹혔던 음식을 자신도 모르게 흐억 하면서 게워낸다. 가정상비약으로 까스 활명수를 두던 시절 이야기다. 시인 손세실리아는 체쟁이 틀니할멈 이야기를 ‘체 내는 여자’란 시에 적어두었다.

‘저 골목에 뛰노는 얘들은 다 내가 받았어’. 지금으로 말하면 동네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 역할을 했던 독천댁 할머니는 우리 또래를 보면 마치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신처럼 말씀하셨다. 동무들과 간혹 찾아뵈었으나 돌아가셨고, 이제 집에서 아가 낳는 사람은 없다. 놀다가 아이들이 팔이 빠지거나 일하다가 발목이 접질리면 찾아가는 ‘뼈 맞춰주는’ 승규아재도 있었다.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힘이 장사여서 남들 두 배의 밭일도 거뜬히 했다.

언제부턴가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 서양식 병원 앞에서 ‘침 뜸’이란 간판을 걸었다. 조그마한 나무 간판과 침 뜸 놓는 구들방은 김 센 아저씨가 고쳤다. 복덕방 할아버지처럼 나이 드신 분들이 다녔고, 이을 사람이 없어 나이 들어서도 마치질을 하던 대장장이들과 뼈 맞춰주는 승규아재가 드나들었다.

마을마다 솜씨 좋은 사람들 있었다. 뛰어난 솜씨뿐 아니라 사물의 이치까지 깨달은 사람을 우리는 고수(高手)라 부른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썼던 유홍준은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 사람 사는 곳곳마다 상수들 꼭 있다며 ‘상수’란 말을 썼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는 어느 일에 몰두한 사람들의 신기한 기술, 말 그대로 신의 경지에 이른 솜씨들을 찾아 보여준다. 그런데 ‘달인’이란 말은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썼으니 우리말이 아님에 틀림없다.

옛날 솜씨 좋은 고수들은 하고 싶어 스스로 배웠고, 즐겁게 일했다. 배우고 익힌 뒤에도 더 나은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고, 게으름 피우지 않았다. 온힘을 다했다는 뜻이다. 고수들은 참된 마음으로 했고, 알차고 똑바르게 했다. 그 분야에서 마을을 대표하기에 책임감이 남달랐고, 사람들의 믿음이 있기에 고수들은 함부로 하거나 슬렁슬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을이나 집안의 사정을 잘 알기에 맞춤형 서비스가 뛰어났다. 심지어는 비슷한 물건인데도 잘사는 사람에게는 비싸게 받고, 못사는 사람에게는 헐값을 받았다. 값마저도 맞춤형이었다는 말이다. 값에서도 고수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부자들이 눈은 흘겼으나 쪼잔하게 따지지는 않았다. 부자들의 여유이기도 하다.

옛날 고수들이 하던 일? 지금은 자격증 있어야 한다. 자칫 자격증 없이 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잘난 체하는 말발만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 많고, 알지 못하는 이웃들과 함께 사는 시대이니 검증을 위해 자격증이 필요한 시대다. 그런데 보통 자격증 따면 더 공부하지 않는다. 더 애쓰지 않아도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까. 자격증이 건네주는 여유(?)다. 간혹 의사들처럼 모임(협회)을 만들어 세미나를 통해 공부를 더 하는 자격증들도 있기는 있다.

자격증 없어도 솜씨를 갈고 닦아 인정받는 고수들 곳곳에 나타나리라. 고수의 반열에 오르고서도 발전을 멈추지 않는 진정한 고수들 말이다.

김 요 수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콘텐츠산업진흥본부장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