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쉼표도 음악이다

입력 2021.09.30. 11:27 수정 2021.09.30. 19:59 댓글 0개
한경국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1본부

언론사에 입사하기 전 음악에 빠져 살았던 때가 있었다. 주변 선배, 음악 서적, 동영상 등을 통해 기타 연주를 배웠고, 나중에는 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내게 배웠던 학생들은 학생 수만큼 특징이 다양했던 기억이 난다. 악기 연주에 관심 없고 내 이야기만 듣길 원하는 학생, 하루에 한 개씩 새로운 주법을 배워야만 귀가하는 학생, 화음과 불협화음의 이해가 떨어지는 학생, 박자는 무시한 채 연주만 하는 학생 등 손에 꼽을 수 없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밟히는 학생은 쉼표를 지키지 않던 한 초등학생이다. 늘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방긋방긋 웃으며 남들보다 일찍 와서 즐겁게 수업을 받았다. 정말 착한 아이였지만 음악적 재능은 부족한 편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싱커페이션(당김음) 주법을 이해할 동안 이 아이는 쉬운 주법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이 아이의 문제는 간단했다. 박자였다. 듣고 있으면 쉼표가 없다시피 연주했다. 많이, 빨리 연주하면 잘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아이의 약점은 합주에서 드러났다. 주변 악기들과 합을 맞추지 못해 점점 빨라져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따로 불러 정해진 bpm에 맞춰 연주를 시켜봤지만 여전했다.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큰 박자에 박수를 쳐보기도 하고 입으로 숫자를 세어보기도 했다. 옆에서 한음씩 짚어줄 때는 괜찮았지만, 혼자 연주할 때는 다시 속도가 들쭉날쭉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제법 박자에 맞춰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속주에 더 이상 집착하지도 않았고, 합주 때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지었다. 달라진 모습은 자세에서도 보였다. 성실한 것은 여전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여유를 갖고 박자를 지키려는 태도가 그 아이의 연주를 소음에서 음악으로 거듭나게 했다. 예전보다 더 집중하고 있나 싶어 칭찬도 해줬다.

무엇이 이 아이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내심 뿌듯해 하고 한편으로 신기해서 내가 가르쳤던 내용들을 천천히 곱씹어 봤다. "속주는 능력 중 하나지만 느리게도 연주할 수 있을 때 그 가치는 의미 있다"고 주구장창 설명해줬던 것이 도움이 됐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아이의 말은 달랐다. 의외로 간단한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바로 "쉼표도 음악이다"는 말이었다. 그 아이 역시 자기 나름대로 음악을 하고 있었다. 다만 속주를 좋아하고 많은 소리를 내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쉼표가 싫었다고 한다. 그러다 쉼표 없이 연주하는 것은 음악이 아닌 소음이란 것을 깨달았고, 음악을 위해 쉼표를 지키게 됐다.

이 아이의 깨달음은 우리 삶과도 연결된다. 우리 인생에도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이들이 더 좋은 하루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건강, 시간, 인연, 추억 등 더욱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아간다.

10월에 두 차례 대체공휴일이 있다. 개천절,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봤으면 한다. 훌륭한 연주로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고 싶은가. 행복을 찾아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행복과 멀어지는 행동으로 인생을 보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볼만한 시점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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