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블랙 리스트도 화이트 리스트도 없는 세상을 꿈꾸며”

입력 2017.10.29. 19:02 수정 2017.10.30. 08:17 댓글 0개
맹수진 아침시평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영화평론가

모처럼 영화를 원 없이 본 10월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덕분이다. 그 해에 완성된 전세계의 화제작, 수작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부산국제영화제는 분명 영화팬들의 눈과 귀를 행복하게 해주는 황홀한 영화제임이다.

필자 역시 영화제 기간 부산의 상영관들을 바쁘게 오가며 거장감독의 따끈한 신작에서 재능 있는 신인들의 기대작까지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열심히 발품을 팔아 본 영화가 30편인데 30이라는 숫자는 기껏해야 부산영화제 전체 상영작의 1/10에 불과하다. 그만큼 부산영화제가 좋은 영화에 목마른 영화팬들에게 훌륭한 영화 성찬을 만끽할 수 있는 축복같은 영화제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편으로 올해 부산영화제는 지난 몇 년 간 지속되어 온 상처와 구설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개막식장에서 레드카펫을 강행한 서병수 부산시장의 돌출행보는 다시 한번 영화인들의 분노를 자극하면서 릴레이 시위를 촉발했고 급기야 폐막식에서 올해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한 박배일 감독이 서병수 시장을 작심 비판하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영화제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개입과 간섭에서 촉발된 부산영화제 사태가 낳은 가장 심각한 폐해는 영화인들 사이에 만연해진 상호불신과 갈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 부산영화제 사태는 박근혜 정권, 서병수 시장체제에서 갑자기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 MB정권 이후 체계적으로 진행된 블랙리스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예술을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 정치권력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얼마나 무리수를 둘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소수 몇몇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계 전반에 걸쳐 엉청난 후유증을 낳았다는 점이다.

2010년경 필자 역시 어이없는 일들을 겪었다. 당시 필자는 KTV에서 ‘날아라 독립영화’라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었다. 참여정부 마지막 1년에서 이명박 정부 초기 1년 사이 2년 간 진행된 이 코너는 당시 KTV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이 가장 높은 코너라고 했다. 그러나 2009년 말 프로그램에 대한 간섭이 눈에 띄게 심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조만간 이 프로그램이 폐지될 것임을 예감했다. 2010년 봄, 작가로부터 마지막 방송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날 나는 이 정부의 독립영화 정책에 대해 그동안의 소회와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생방송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마지막 인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발언 순서를 이리저리 뒤틀며 마지막 멘트를 방해하던 진행자는 결국 “네, 맹수진 선생님. 오늘도 감사합니다.”라는 기습적인 ‘~ING’형 멘트로 2년간의 프로그램을 순식간에 종결시켰다. 시청자들에게 작별인사할 기회마저 뺏긴 나는 당시 ‘한국영상자료원’에 막 연재를 시작한 [독립영화칼럼]에 이 날 겪은 일에 대해 썼다. 물론 그 칼럼 역시 그 한번으로 ‘짤리고’ 말았는데, 도대체 이 일련의 사건들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것이 황당할 뿐이다. 최근에야 나는 ‘MB 블랙리스트’ 82인 가운데 내 이름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시 벌어진 일들이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체계적으로 진행된 ‘좌파 청산’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실을 알고난 뒤 나는 그동안 알고 지내던 공공기관의 몇몇 지인들을 떠올렸다. 그들과 웃으며 대화했던 시간, 분명 그들은 이 블랙 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텐데, 어쩌면 그들은 블랙리스트의 적극적인 실천자들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웃으며 나와 대화를 했던걸까?,라는 칙칙한 상상이 이어졌다.

며칠전 끝난 영평상 본심회의 역시 유사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영화평론가협회에도 지난 정부에 부정한 방식으로 협력한 이들이 있고 그것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상황해결방식에 대해서도 저마다 입장이 다르다. 그간의 문제가 절차와 합법성을 무시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합법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좀처럼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규칙을 위반하는 이들 앞에서 규칙을 지키는 이들만 바보된다는 피해의식과 의심이 만연해진 까닭이다. 단순히 사람 몇 명 바꾸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 안에 만연한 불신과 피해의식을 치유하고 합리적 시스템을 복구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가늠하기 힘들기에 마음이 무거운 요즈음이다. 진정으로 블랙리스트도 화이트 리스트도 없는 상식적인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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