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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팬데믹에서 찾은 교육의 참 의미
입력 2021.09.14. 08:56 수정 2021.09.14. 19:33 댓글 0개연일 암울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전면등교 후 광주 12개 학교서 37명 확진" (남도일보, 이은창 기자, 2021.09.08.)
기사에 따르면 지난 달 22일 서구 모 고등학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후 12개 유치원과 초·중·고서 학생 등 37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학교 내 감염으로 광주에서는 현재까지 3천196명이 전수검사를 받았으며, 2천245명이 자가격리 조치 되었다고 한다. 최근 인근 학교의 확진자 다수 발생으로 매우 긴박했던 일주일을 보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늘어난 자가격리 및 자율격리 학생들을 살피며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살얼음판을 디디는 것처럼 불안하고 긴장된 일주일이었다.
수업과 방역 사이의 딜레마
그렇게 전교직원이 힘을 합쳐 힘겹게 전면등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속상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가장 속상했던 이야기들은 확진자가 나온 학교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너무 자유롭게 체육활동을 많이 한 것은 아니냐, 토론수업이나 모둠활동을 통해 감염이 확산된 것은 아니냐에 대한 색안경을 낀 시선들이었다. 솔직히 형식만 대면수업이라면 거의 원격수업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마스크를 쓰고 경직된 자세로 교사만 바라보고, 동급생들과 어떠한 교류도 없이 교사 혼자 일방적으로 지식 전달에만 머무르는 수업은 교육을 더욱 퇴보시키는 것이 아닐까?
'위드코로나'를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도 무조건 방역 우선이 아닌 학생들의 성장과 배움을 위한 '위드코로나 시대의 교육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방역수칙을 지키면서도 점진적으로 신체활동을 늘리고, 서로 평등하게 묻고 배울 수 있는 기회와 문화 및 예술 체험의 장을 늘려가려는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와 노력에 무조건적인 비난은 멈춰져야 할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300명 이하 소규모 학교의 특장점으로 지난 1학기를 비롯해 현재까지 전면등교를 거의 멈춘 적이 없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최대한 지키며 수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방역수칙을 지키며 학생들의 신체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거리두기 모둠활동, 발도르프 및 스토리텔링 교육 등 학생들의 학업은 물론 정서적 지원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 상반기 교육활동 평가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모두 고르게 받은 높은 점수(8~9점/10점 만점)는 전면등교가 왜 필요한지, 전면등교 상황에서 다양한 교육활동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는 증거일 것이다.
어느 명예퇴직 교사의 마지막 수업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늦은 4시, 신용중학교 물리실험실에서는 명예퇴직하는 과학 교사의 마지막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 주제는 '함께 배우는 과학 속 삶 이야기'였다. 정규시간 수업이 아님에도 교실을 꽉 채운 아이들의 눈빛은 호기심, 존경, 애정, 감출 수 없는 장난기 등 여느 중학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생동감이 가득했다. '공명'을 통해 '공감'을, '공기의 이동'을 통해 '나눔과 평화의 삶'을, '코로나19' 상황을 통해 '함께 꿈꾸는 행복한 삶'이 수업의 핵심이었다. 어느 과학 교사의 마지막 수업은 이 자리에 함께했던 학생들과 교사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며 갈무리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팬데믹 시대에 자신의 교육 경력의 마지막을 아이들과 함께한 수업으로 맺음하려 했던 그 마음이, 코로나 시대를 극복해가고자 하는 진정한 교육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감히 판단해 본다. 방역과 건강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 신체적·정서적인 돌봄을 수행하는 교사들의 마음이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면서도 굳건하게 전면등교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퇴임하는 교사의 마지막 수업이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6일 한겨레신문에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학교가 '선택' 아닌 '전부'인 아이들을 위해...전면등교가 답이다."
이제 전면등교가 당위적인 기본전제라면, 배움과 성장을 이끄는 적극적인 교육활동으로 불평등하고 길었던 교육의 공백을 메웠으면 한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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