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유엔 대북제재위 패널 종료에 "北, 더 대담해질 것"(종합)뉴시스
- 美법원, 고갯돈 사기 FTX 창업자 뱅크먼프리드에 징역 25년 선고뉴시스
- 백악관 "러시아 무모한 행동으로 대북제재 훼손"뉴시스
- 이대호, 박광재에 "자꾸 그러면 산적 소리 들어"··· 왜?뉴시스
- [속보] 美법원, 고갯돈 사기 FTX 창업자에 징역 25년 선고뉴시스
- 美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 21만건···전주대비 2000건 감소뉴시스
- 유엔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러 반대로 15년 활동 종료(종합)뉴시스
- 푸바오, 韓 마지막 출근 공개···'푸바오 위크'뉴시스
- 정부 "대북제재위 패널 임기연장 부결에 깊은 유감···러, 무책임"뉴시스
- 중견 주택업체, 4월 아파트 7605가구 분양···전월比 38% 늘어뉴시스
<칼럼> 코로나 백신 접종 우선 순위와 교육
입력 2021.09.07. 09:30 수정 2021.09.07. 19:33 댓글 0개미국이나 독일, 터키와 인도네시아 같은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교사들은 코로나19 예방 백신을 우선적으로 접종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교사들은 우선접종 대상자가 아니다. 얼마 전에 미국 모더나 회사의 코로나 예방 백신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예정된 접종일이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도, 교사들은 예외 없이 일방적인 접종 연기를 통보받았다. 방학 중에 백신을 접종하고 2학기를 맞이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학교와 현장의 교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정부는 당시에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재학생이 아닌 대학 입시 수험생들까지 포함하여)에 대하여서는 연기 없이 백신 2차 접종을 실시하였다. 물론 1차 백신 접종도 고3 학생들은 교사들보다 우선 순위였다. 교사들은 7월 28일 처음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고3 학생들은 이보다 앞선 19일에 시작되었다. (고3 학생 집단과 교사 집단은 수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정부는 어떤 이유로 고3 학생들의 접종이 교사들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대부분의 나라에서 우선 접종 순위는 일선 의료진, 심각한 질병이 있거나 사망의 위험이 높은 집단, 감염 위험이 높은 집단, 전파할 위험이 높은 집단 그리고 사회의 핵심 기능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집단 등이다. 이 중 어떤 경우가 고3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것일까? 질병에 취약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은 아닐 것이고, 그러면 감염 위험이나 전파 위험이 높은 집단인가? 이와 관련하여 정부는 11월 수학능력시험을 말하였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수능일에 예상되는 감염과 전파 위험이, 매일 수십 혹은 수백명의 학생들을 밀폐된 교실 공간에서 종일 만나서 대화하고 접촉하는 교사들의 감염과 전파 위험보다 크다는 말일까? 그것도 아직 3개월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는 수능일 하루의 위험도가 당장 2학기에 전면 등교하는 학생들을 매일 만나야 하는 교사들의 위험도보다 더 심각하고 그래서 접종이 더 시급하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면 혹시 고3 학생들이 위에서 말한 우선 순위 기준 중에 남은 한 가지 즉 '사회의 핵심 기능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집단'이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겠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는 사회의 다른 어떤 일보다 중차대하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도 지대하다. 한국에서는 한 사람의 일생이 대학 입시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수학능력시험은 '단 하루에 판가름이 나는' 대학 입학 시험이다. 그래서 이 하루를 위해 온 나라가 관심을 기울이고 숨을 죽인다. 이 시험의 안전하고 성공적 시행을 위해 온 정부가 나선다. 바로 이 하루를 겪고 치러내야 할 당사자들이 바로 고3 학생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 사회의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수행하는 집단이 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사회의 비정상과 우리 교육의 왜곡과 전도가 있다. 단 하루의 시험으로 한 사람의 일생이 결정되는 사회는 분명히 정상이 아니다. 단지 어떤 대학에 입학했는지에 따라 한 사람 일생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는 사회는 결코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과 사람됨이 단 하루 동안 치러지는 백 수십 문항의 오지선다형 필기시험 문제에 의해 채점되고, 이 채점 결과에 따라 그 등급이 나누어지는 사회,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 등급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등급이 나눠지는 사회가 어떻게 정상이겠는가?
본질적으로 시험은 한 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원래 시험이 유래한 교육영역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시험은 다음 단계 학생 교육을 위한 피드백을 얻기 위해 실시하는, 다시 말해 교육을 위한 일종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 등수를 갈라 선별하고 줄을 세우는 데 이용되는 시험은 시험의 근본적 왜곡이며, 시험 특히 대학 입학시험이 초중등 전 교육의 실질적인 목적이 되어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현 정부와 교육부가 이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 · <칼럼>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 · <칼럼> 학급 당 학생 수라 쓰고 학생 삶이라고 읽는다
- · <칼럼> 도둑맞은 학생들의 집중력을 되찾으려면
- · <칼럼> 광주교육 최장 200일 시위, 슬로건 대체 무엇 이길래
- 1[단독] 광주서 빗길에 '포르쉐' 인도로 돌진..
- 2광주 중앙공원 1지구, 공공기여금 1371억원·분양가 2401만..
- 3광주 '힐스테이트 중외공원' 선착순 동·호지정 분양..
- 4"선호 크기 평균 34.6평···드레스룸·시스템 에어컨 있었으면..
- 5금값 또 역대 최고···한 돈 40만원 돌파..
- 6[무슐랭] 화순 벚꽃 명소 맛집, '불타는 용궁짬뽕..
- 7"쌍촌동 아파트 분양권 있어" 수억 가로챈 50대 영장..
- 8"대한민국 연예인 다 왔네"···혜은이 딸 결혼식, 어땠길래..
- 9내달리는 내복차림 아이 따라가 집 찾아준 곡성 경찰..
- 10[광주소식]우치·상록·수완호수 공원 벚꽃명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