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측량자 홍길동

입력 2021.07.22. 09:08 수정 2021.07.22. 20:17 댓글 0개
김현수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서울취재본부

홍길동 버전은 2가지다.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 주인공 홍길동과 조선왕조실록 연산군편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홍길동이다.

실존 인물 홍길동은 도적이었다. 실록을 보면 '1500년 음력 10월 22일 충청도에서 홍길동을 체포'라고 나와 있다.

다만 소설에 묘사된 의적(義賊)이라기 보다 조정 거물급 인사를 뒷배로 둔 도적이다.

홍길동의 뒷배는 정3품 벼슬의 엄귀손이었다. 홍길동은 엄귀손의 비호하에 관리를 사칭하며 관군을 농락했다.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은 도적이면서 무술, 학문, 점술, 용병술, 초능력을 두루 갖춘 천재형 사람으로 등장한다.

소설에 묘사된 홍길동의 초능력은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미국 영화 속 주인공인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헐크를 능가할 정도다.

홍길동은 천근(600㎏) 바위를 들어 수십 걸음을 걷는 괴력의 소유자이다. 허수아비를 매개로 한번에 홍길동 8명을 만드는 분신술, 바람을 만들어내고 날씨를 조종하는 능력도 보여준다. 환상을 보여주거나 텔레파시 능력을 사용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정신을 억압하는 장면도 소설에 나온다.

분신술를 부리며 조선시대 탐관오리를 농락한 '홍길동'이 2021년 대한민국 국회에 나타났다. '광주 동구 건축물 붕괴사고 관련 현안보고'가 열린 지난달 1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다. 국토위는 이날 국토교통부 장관, 광주 동구청장,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등을 출석시킨 가운데 사고 원인 및 대책 마련 등을 논의했다. '홍길동'은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 과정에서 나타났다. 김 의원은 철거 사업자가 동구청에 제출한 건물 해체계획서에 측량자가 '홍길동'으로 쓰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 뿐만 아니라 해체계획서의 허점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건물 안전도 검사를 한 지난 4월29일 날씨는 '맑음'으로 기록됐는데, 이날 광주 동구는 황사로 가득했다. 지난해 12월29일 안전도 검사 당시 온도는 '25도'로 적혀있으나, 이날은 영하를 오르내리던 날씨였다.

동구청 담당자가 해체계획서만 제대로 봤어도 '홍길동' 출몰은 막았고, 그랬더라면 광주 동구 학동 건물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의적 '홍길동'이 더 이상 대한민국 공문서에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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