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숙의 민주주의

입력 2017.10.23. 11:36 수정 2017.10.23. 18:51 댓글 0개
김종석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대표이사

숙의(熟議)는 ‘여러 사람이 어떤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해도 숙의민주주의는 생소하다. ‘deliberative democracy’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요셉 M. 베제테가 1980년 저술한 《숙의민주주의: 공화 정부에서 다수 원리》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됐다. 민주주의의 한 유형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사이에 공개적인 논증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절차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국가 권력의 잠정적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민주적 통치방식이다.

숙의민주주의는 국민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간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정치발전을 위한 학습의 장으로 기능한다. 특정한 이념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절차 자체를 중요시 한다. 절차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깊이 사고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쟁점을 해결하는 과정이 중시된다. 이미지나 이념을 중심으로 대중을 조작 또는 선동해 권력 행위를 합리화하는 현대정치의 병폐를 방지한다.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참여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숙의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닌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절차에 역점을 둔다. 제임스 피쉬킨의 5개의 적법한 ‘숙의 요소’가 흔히 사용된다. 첫째 ‘정보’다. 정확하고 관련된 데이터는 모든 참여자들에게 자유롭게 이용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두 번째 ‘실질적 균형’으로 서로 다른 입장들은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에 기반 해 비교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 가까운 현실 문제와 관련되고 대중에 의해 제기된 모든 중요한 입장들이 고려되는 ‘다양성’이다. 네 번째는 ‘양심성’은 참여자들이 모든 논쟁들을 진지하고 신중하게 평가한다. 마지막, 관점들은 특정한 관점을 옹호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증거에 기반 해 평가되는 ‘동등한 결여’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지형)는 원전의 안전성과 환경성, 경제성을 놓고 쟁점 토의를 한 뒤 마지막 날 4차 최종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지난 20일 정부에 공사 재개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숙의민주주의’가 채택됐다. 권고안을 신고리 원전건설 찬반 양측 모두가 수용하면서 숙의민주주의의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작은 대한민국이었다”면서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하는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줬다”고 환영했다. 하지만 시일의 촉박성, 중요한 국가 정책 결정 과정의 떠넘기기에 대한 우려도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요구가 분출된다. 그래 현 대의 민주주의가 정답인가라는 논쟁이 일기도 한다. 숙의민주주의가 국가 또는 지역의 첨예한 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적 통치방식으로 정착될지 관심이다.

김종석 논설실장 bellsto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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