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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태숙, 심리극 장인 인증…연극 '1984'

입력 2017.10.22. 11:47 댓글 0개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심리극 장인' 한태숙(극단 물리 대표) 연출가가 연극 '1984'에서도 명성을 입증했다. '빅브라더'로 대변되는 통제사회의 심리적 압박감을 스산하게 표현했다.

개인 행동은 물론 생각마저 감시·통제하는 사회, 게다가 절대 권력에 저항하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어도 가혹하게 처벌되는 전체주의가 배경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영국의 젊은 극작가 겸 연출가 로버트 아이크와 던컨 맥밀런이 각색한 희곡을 무대에 올렸다. 2013년 영국에서 초연된 희곡이다. 당시 일부 관객이 토할 정도로 버겁게 연출됐는데 한 연출은 이번에 온도를 낮췄다.

진실과 모순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윈스턴'의 폭풍 같은 내면이 차갑게 벼려져 오히려 이성적인 성찰을 하게끔 만든다. 극이 끝난 뒤 혼란이 찾아오지만, 그건 오히려 윈스터에 몰입했다는 증거다.

이처럼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이 제작한 '1984'는 내적으로 응집력이 강하다면 외적으로는 접착력이 강하다. 현실에 맞물리는 이야기를 한다.

문화를 압박하고 경시하는 미국 트럼프 시대를 맞아 정부가 국민을 감시·통제하는 '1984'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 '1984'는 재개봉했다. 세계공연계의 중심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아이크?맥밀런의 희곡은 현실과 더 맞물린다. 원작 '1984'의 부록 부분을 포함시킨 최초의 각색본이다. 오웰의 작품을 부록과 각주가 핵심이 되는 액자형 소설로 봤다. 소설에 없는 미래의 '북클럽'과 '호스트'가 설정된 이유다.

한 연출은 북클럽이 현실을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보고, 북클럽에 속한 이들의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 윈스턴의 혼란이 더 부각되는데 "자신이 하는 일에 번민조차 할 수 없는 수 없는 우리 시대 젊은 사람들에 대한 동질감"(한태숙 연출)이 느껴진다.

이 부분은 극 마지막에 윈스턴이 짐승처럼 울부짖을 때 더 도드라진다.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이 사나운 쥐가 든 우리를 윈스턴에 들이미는 순간이다. "이것을 줄리아에게 하시오! 줄리아에게 말이오! 내게 하지 말고 줄리아에게!" 줄리아는 윈스턴 스스로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배신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던 대상이다.

연극이 끝나면 윈스턴 역의 이승헌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평소 악하고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그는 이윤택 예술감독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대표 배우다. 자신에게 윈스턴 제안이 들어온 건 의외여서 처음에는 고사했다고 했다. 하지만 극의 상징과 메시지를 압축한 그의 날 것의 연기는 다른 윈스턴을 상상할 수 없게 했다.

이런 점들의 총합으로 인해 '1984'는 '레이디 맥베스', '오이디푸스', '세일즈맨의 죽음' 등 세심하게 저울질한 균형미가 일품이었던 한 연출의 고전 연극 목록에 어울리는 작품이 됐다.

텔레스크린이 추가되는 겹겹이 쌓아 올린 박스 형태의 차갑고 상징이 가득한 무대는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의 솜씨다. 심리를 형상화한 듯한 날카로운 사운드의 디자인은 지미 세르가 맡았다. 오는 11월19일까지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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