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처음 오는 묘역···뭉클하고 가슴아파요"

입력 2021.05.07. 11:45 수정 2021.05.07. 13:32 댓글 0개
7일 용연학교 학생들이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저희같은 어린 나이에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니 놀랐어요. 잘 몰라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5·18이었는데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네요."

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다가오면서 국립5·18민주묘지 참배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대안학교인 용연학교 학생들도 참배 행렬에 동참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민주묘지를 참배했다는 학생들은 민주의 문을 처음 밟고 추모탑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한 용연학교 학생 박지선(16)양과 친구들은 이날 묘역 참배가 처음이다. 지난 3월 용연학교에 입학한 박 양은 이날 학교에서 마련한 현장학습을 통해 묘역을 방문했다. 대부분의 또래가 그렇듯 박 양 또한 5·18을 공부의 소재로만 여겼을 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박 양과 친구들은 함께 타고 온 버스에서 내리면서도 종일 밝은 표정을 짓고있었다.

용연학교 재학생 박지선(16)양

이들의 표정은 민주의 문을 넘고 추모탑으로 향하면서 점점 엄숙해져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자 친구들끼리 꼈던 팔짱을 풀었다. 먼저 온 참배객들의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에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헌화를 진행한 학생들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묘역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이들은 문재학 열사의 묘비 앞에 멈춰섰다. 1980년 당시 광주상고에 다니던 문 열사는 16세의 나이로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다.

문 열사는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만행에 숨진 시민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유족에게 인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80년 5월 27일 시민군이 최후의 항쟁을 벌일 때에도 끝까지 남아 옛 전남도청을 사수했다. 문 열사는 계엄군과 항전을 벌이던 끝에 안종필 열사와 함께 도경찰국 2층 복도에서 숨졌다.

문 열사의 묘비 앞에 멈춰서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던 학생들은 조심스레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았다.

이날 참배를 마친 박 양은 "묘역 참배를 통해 80년 5월 당시 많은 광주시민들이 희생됐고 이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특히 우리 또래 나이에 죽음을 각오하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당시 열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시 광주 시민들의 용기를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주기자 lyj2578@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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