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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본 정세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준비된 리더십
입력 2021.05.02. 16:49 수정 2021.05.03. 18:57 댓글 0개물은 세상을 다 품은 뒤에 흐른다(盈科而後進). 맹자 이루하편에 나오는 말이다. 물은 건너뛰는 법이 없다. 자신보다 낮은 곳을 만나면 밑바닥부터 모두 채우고 난 다음 흘러간다. 물길은 처음엔 가느다랗고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존재감을 키워나간다. 좁다란 시내가 너른 강물이 되고, 강물은 마침내 드넓은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정세균 전 총리가 꼭 그런 인물이다. 김대중 총재의 천거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경제인 출신답게 실사구시의 길을 개척해왔다. 김대중 총재가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정치 사조직인 연청 중앙회장에 초선 정세균을 임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만큼 김대중은 정세균을 신뢰했다. IMF 외환위기로 민생이 파탄 직전에 이르자 김대중 당선인은 자신의 사저로 그를 불렀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대한민국 복지체계의 기틀이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다. 이후 그는 정책위의장을 거쳐, 원내대표, 당대표까지 정치적 성장가도를 달린다.
혹자는 정 전 총리를 두고 이력에 비해 자신만의 색깔이 부족하다고 한다. 속내야 어떻든 제대로 봤다. 물은 원래 색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투명색이다. 흙을 품으면 흙색에 동화되고, 진주를 품으면 진주빛을 비춘다. 세상만물을 다 품어 안을 수 있음에도 자신을 감추고 상대를 먼저 드러내는 겸양의 미덕까지 갖췄다. 내가 만난 정 전 총리는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질 줄 아는 따뜻한 정치인이다. 대기업 중심의 낙수경제가 아니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중심의 분수경제를 주창해왔던 이면에는 그만의 정치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그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악법에 단식으로 맞섰고, 국회의장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유연함과 강단을 겸비한 그만의 색을 가진 정치인이다.
정 전 총리의 별명은 코로나 방역 사령관이다. 취임 엿새 만에 국내 코로나 환자가 처음 나왔단다. 신천지 사태로 온 국민이 불안해 할 때, 그는 자신을 던져 대구·경북의 두려움을 메웠다. 유수의 기업 오너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생활치료센터를 확보했다. 작은 공적도 크게 부풀리려하는 여느 정치인과 달리, 조용히 대구·경북의 코로나를 잠재웠다. 그는 대구를 떠나며 한마디를 남겼다. 대구·경북의 품격을 봤다고.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경제적 피해를 줄이는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해왔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위기극복의 모범국가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제 코로나를 넘어 그 이후의 세상을 준비할 때다.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의 선거구호는 'Build Back Better'였다. 얼마 전 정 전 총리가 광주대학교에서 한 강연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나아갈 방향으로 '더 나은 회복'을 강조했다. 단순히 코로나 이전으로의 원상회복이 아니라 사회시스템의 혁신을 수반한 '미래지향적 회복'이다. 혁신의 과정에 부수되는 사회적 불안정은 '돌봄사회' 시스템으로 보완해나가자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간 정세균이 보여준 따뜻한 품격, 정치인 정세균이 축적해온 경험과 유능함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여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시대는 '준비된 리더'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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