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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레라' 덕출 전에 먼저 날아올랐다···'댄스포피디'

입력 2021.04.22. 18:08 댓글 0개
[서울=뉴시스]드라마 '나빌레라' 속 덕출 역의 배우 박인환(사진=방송화면 캡처)2021.04.2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나도 날아오르고 싶어"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 드라마 '나빌레라'는 '꿈'에 대해 다루는 작품이다. 극은 주인공 '덕출'(박인환)의 이야기를 가장 중심축으로 해 전개되는데, 덕출은 일흔살이 되던 해 연이은 친구들의 죽음으로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실현에 옮긴다.

덕출은 초등학교도 들어아기 전 우연히 '백조의 호수' 연습 모습을 보고 '날아오르고 싶다'고 꿈꾼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버지의 반대로, 이후에는 가장의 역할을 위해 꿈을 고이 접어 놓고 산다.

이후 60여 년이 흘러 발레를 통해 태어나 처음 맛 보는 '행복'에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도, 주변의 시선도, 가족들의 반대도 그 '기쁨'을 가로막지 못 한다.

현실판 '덕출들'이 있다면 어떨까?

'나빌레라' 덕출 이전에 '댄스포피디' 덕출들이 있었다
[서울=뉴시스]22일 온라인을 통해 진행된 '댄스포피디' 수업. 김하연 강사의 지시에 따라 수업에 참여한 파킨슨병 환우들이 인사를 해 보이고 있다.(사진=줌 캡처)2021.04.22 photo@newsis.com

22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Dance for PD(댄스포피디, 파킨슨 환우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 수업을 찾았다. PD는 "Parkinson's Disease"의 약자로 파키슨병을 가리킨다. 무용수들의 재활, 직업전환, 무용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이 프로그램을 2017년 국내에서 최초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뉴욕의 마크 모리스 무용단이 2001년부터 브루클린 파킨슨 그룹과 파킨슨 환자 치료를 위해 개발한 무용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파킨슨병 재활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개발됐지만, 단지 무용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활용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20년 동안 전문 무용수로 활동한 파멜라 퀸이 파킨슨병을 앓으며 개발한 프로그램이기에 재활 프로그램보다 '파킨슨병 환자 맞춤식 무용 레슨'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2시 수업이 열리자 김하연 강사는 '아마추어 무용수' 덕출들(파킨슨병 환우들) 10여 명과 함께 손을 반대편 가슴으로 가져다 댄 후 반대로 쓸어내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이는 '나빌레라'에서 덕출이 처음으로 동료 무용수들 앞에서 짧은 동작은 선보인 후 한 발레식 인사 동작과도 같다.

김 강사는 수업이 시작하자 '숲 속 명상 음악' 테마의 배경 음악을 재생하고 "산 속에 있다고 상상하세요. 내 몸에 있는 기운을 뇌 쪽으로. 호흡은 깊게 코로 마시면서. 내쉴 때는 멀리 호흡을 뱉어 주세요"라고 말하며 덕출들과 몸풀기를 시작했다. 강사는 무용수들이 발끝부터 손끝, 그리고 안면 근육까지 풀게 했다.

'지루한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김연자의 히트곡 '아모르파티'가 갑자기 흘러나왔다. 무용 동작들도 좀 더 커졌고 수업은 활기를 띄었다.

"아모레 박수 기억 나시죠. 그것에 맞춰서 춤을 춰 볼게요. 특히 이 곡은 노래 가사를 꼭 들어 보세요. 수업 끝나고 한 번 꼭 곱씹어 보세요. 리듬은 신나지만 가사에는 깊은 메시지가 있거든요."

스피커 속에서 "나이는 숫자…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라는 가사가 흘러 나올 때는 자연스럽게 덕출이 생각났다. 강사는 숙환으로 심신이 지쳐있을 이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었을까.

'댄스포피디' 덕출들, 모든 무용 접해…2019년에 이미 공연

[서울=뉴시스]'Dance for PD' 국내외 대면 수업 모습(사진=전문무용수지원센터, Mark Moriss Dance Group 제공)2021.04.22 photo@newsis.com

이 프로그램은 파킨슨병 특유의 증상과 관련된 균형감각, 유연성, 신체조정능력, 걸음걸이, 사회적 고립감, 우울증 등에 관련된 증상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의학계는 이 프로그램을 걷기 등 단기 이동 능력이 향상되고, 삶의 질 개선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강습에서 만난 동료들과 형성하는 긴밀한 유대감은 고립감을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수업은 음악 장르뿐만 아니라 무용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발레 기본 동작에만 국한됐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한국무용 동작, 탱고 동작들도 활용했다. 노래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부터 신명나는 영화 '써니'의 대표 OST도 들을 수 있었다. 김하연 강사는 전화 인터뷰에서 선곡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귀띔했다.

센터 측은 "강사들은 현대무용과 뮤지컬 댄스부터 발레, 포크댄스, 즉흥, 안무 등 다양한 움직임을 종합해 춤을 그 자체로서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파킨슨병 특유의 증상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예술성과 우아함을 향상시킬 수 있는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김하연 강사는 "저번에 했는데도 다들 기억하시네요? 몸이 기억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잊어 버리거 전에 안무 복습을 하셔야 해요 꼭"이라고 말했다. 극 중 덕출의 발레 스승인 채록(송강)이 덕출의 알츠하이머 투병을 알고 그에게 "하루도 빠짐 없이 연습하면 몸이 기억한다" 했던 장면이 데자뷰처럼 지나갔다.

현실판 채록 김하연 강사와 채록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김 강사는 어려운 전문 용어 대신에 '꽃 모양', '아모레' 박수 등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이전부터 연습해 온 동작에 쉬운 이름을 붙여 덕출들을 이끈다는 점이었다.

코로나19도 덕출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2017년 시작된 이래 주1로 열리던 수업은 지난해 전염병으로 인한 공백기 후 주 2회로 늘렸다. 온라인으로 열림에도 불구하고 덕출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댄스포피디' 공연 사진(사진=전문무용수지원센터 제공)2021.04.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심지어 '나빌레라'의 덕출은 마지막회인 26일 방송을 통해 그의 최애작 '백조의 호수' 무대에서 날아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댄스포피디'의 덕출들은 이미 '백조의 호수'로 날아올랐다. 2019년 11월18일 'Dancing With Parkinson's: Dance for PD 환우들의 겨울을 여는 공연'을 선보인 것이다.

이날 길게는 2년여의 시간 동안 수업에 빠지지 않고 출석한 환우부터 이제 막 들어온 환우까지 오렌지 색의 티셔츠를 맞춰 입고 그동안 연습해 온 기량을 뽐냈다. 맞은 편에는 공연 연습에 참여하지 못했던 환우들과 가족들이 관객으로 자리했다.

김무현 강사가 안무·지도를 맡았으며 박선영, 이은형, 장미진 강사가 함께 이날 공연은 발레를 기반으로 겨울을 테마로 열렸다. 하이라이트는 발레리나와 함께 한 '백조의 호수'로 환우들 모두 무용수가 돼 마음껏 날개짓을 하며 우아함을 뽐냈다.

덕출뿐만 아니라 채록들도 '행복감' 느끼며 함께 성장해
[서울=뉴시스]덕출 역의 박인환(왼쪽)과 채록 역의 송강(사진=tvN 제공)2021.04.22 photo@newsis.com

'댄스포피디'는 무용으로 파킨슨 환우들의 몸과 마음, 삶의 질을 바꿀 힘을 준다는 호평 속에 현재 전 세계적으로 24개국 250여 개의 기관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날 수업에 파킨슨 환우 남편과 함께 참석한 박모(61)씨는 "병 때문에 우울한 마음이 많았는데, 그런 게 많이 좋아졌다. 음악도 듣고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다운됐던 기분이 업 된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수업이 진행될 때는 2시간이 걸려도 매주 꼭 갔다. 마음 같아선 매일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료로 수업을 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강사님들이 기본적인 수업 시간보다 항상 늘려서 해 주신다. 열정이 넘친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이 역시 '나빌레라' 속 채록이 처음에는 귀찮아 하던 덕출에게 애정을 갖고 레슨 시간을 늘려준 장면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다.

드라마 속 모습처럼 덕출뿐만 아니라 채록들도 성장하고 있다. 이 수업의 강사들은 전문 무용수에서 은퇴 후 직업 전환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연 사람들이다. 김하연 강사는 자신 역시 항상 배워 간다고.

"저도 우울할 때가 있잖아요. 근데 환우분들과 즐겁게 춤추고 즐기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이분들과의 교감은 무용 전공생들과의 그것과는 확실히 달라요. 저의 수업을 통해 행복해지시는 게 느껴지기 때문에 보람과 뿌듯함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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