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기고> 박원순 사건, 왜 '비극의 탄생'이겠는가?

입력 2021.04.07. 09:41 수정 2021.04.07. 19:50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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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

박원순 사건의 취재물 '비극의 탄생'의 저자로서 6일자 신문에 실린 강준만의 '易地思之'- '박원순 사건 어떤 저널리즘의 비극'에 반론을 제기한다. 강준만 교수의 '역사 산책' 시리즈를 비롯해 그의 저작 대부분을 탐독한 독자로서 그의 이번 글은 극히 실망스럽다.

강 교수는 칼럼에서 저자가 한 가지 주제를 깊게 파는 연구자들에게 나타나는 '터널 시야(tunnel vision)'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저자가 ▲ 취재원에 대한 '거리 두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자신이 새롭게 규정한 피해자들에 대한 '감정이입'의 수준으로까지 나아갔고 ▲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뒤집어 보겠다는 야망의 의지를 드러냈다고 그는 썼다.

인상 비평은 자유이지만, 책을 오독한 것이다. 먼저, 강 교수에게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서울시장실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미디어로 제대로 접한 적이 있는지 묻고싶다. 그러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 책에 쓴 바와 같이 대다수 언론들은 이들의 설명에 관심이 없거나 일부 기자들은 '가해조력자의 변명' 쯤으로 깔아뭉갰으니까.

저자는 40명이 넘는 동료 공무원들의 증언을 들어본 뒤 피해자의 주장이 상당 부분 부풀려져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책에서 '미디어 쏠림' 현상의 위험성을 지적했고, 그 연장선에서 법원 판결과 국가인권위 결정에도 치명적인 하자가 있음을 적시했다.

그런데 많은 평자들(심지어 진중권 같은 이는 책을 보지도 않고 비판했다)은 책에 새로 드러난 팩트들에는 애써 눈감고 '국가기관이 내린 결론'이라는 돌림 노래만 읊고 있다. 타인의 권위에 기대서 일방의 주장을 무턱대고 수용하는 '극장의 우상'이 아닌가?

피해자를 반박하는 '새 증언'이 나와도 침묵하거나 "2차 가해에 침묵하는 것도 2차 가해"(김재련 변호사)라는 식의 황당한 어법이 난무하는 세태에도 주목하는 것이 미디어 학자의 균형 감각이 아닐까?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뒤집어 보겠다'는 야망 같은 것은 없었다. 박원순 사건은 내 창작의 산물이 아니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취재하다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큰 그림'이 나왔을 뿐이다.

물론, 취재를 거듭하면서 책의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비극성'에 주목한 것은 사실이다. 달리 책 제목이 '비극의 탄생'이겠는가?

기자 생활 20년 동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세상사가 선악으로 일도양단 나눠질 때도 있지만, 그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많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강준만 칼럼은 '피해자 =선, 박원순 =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큰 틀에서는 박 시장과 피해자 모두 불쌍한 사람으로 본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잘못된 의전 문화'인데 손 기자는 그런 '복잡성'을 포기한 채 선명하고 단순한 이분법 논지를 향해 달려간다"고 썼다.우리 사회의 의전 문화에 거품이 많이 끼어있고, 박 시장도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잘못된 의전 문화'가 전부는 아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래디컬 페미니즘, 증거재판주의, 국가기관의 신뢰성 등등 더 중요한 논제들이 있다. 의전의 문제는 4월사건 피해자의 아픔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을 차기 서울시장이 잘 풀어주길 기대한다.

< 이 글은 무등일보 4월 6일자 19면에 게재된 강준만의 '易地思之'에 대한 반론 기고임을 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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