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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궐선거의 긍정적인 면
입력 2021.03.28. 12:32 수정 2021.03.30. 08:47 댓글 0개이왕 하는 보궐선거,
그 나름의 장점을 찾아
정신승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몇 가지만 얘기해 본다
첫째,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재미가 쏠쏠하더라.
둘째, 야당이 전열을
정비할 계기가 됐다
이 밖에도 재한 중국인들의
표심을 알 수 있게 됐으며,
박형준 후보 딸의 입시비리
관련 기사를 SNS에서 공유한
조국 전 장관은 역시 멘탈이
남다르다는 것 등등…
2020년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였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뜻, 교수신문이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해 온 건 오래 됐지만, 작년만큼 국민의 공감을 얻은 적은 없었다. 문재인 정권 인사들이 하나같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구린 일이 드러나면 문재인 정권 인사들은 1) 그런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고, 2) 사실로 드러난 뒤엔 전 정권 탓이라고 했으며, 3) 그래도 안되면 그게 왜 잘못이냐고 우겼다. 문정권에게 지지를 보낸 이들 중 상당수가 지지를 철회한 건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뻔뻔함에 질린 탓이 컸다. 예를 들어 박원순 전 시장을 보자. 그에게 목숨을 끊을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자마자 그 일을 감행한 것은 스스로 범행을 인정한 가장 강력한 증거였고, 이는 다른 이의 재판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정권 인사들은 여전히 그 사실을 부인했고, '피해호소인'이란 듣도보도 못한 말을 만들어내는 등 2차가해까지 서슴치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 이 정권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염치조차 기대하면 안되겠구나!'
그런데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20일 앞둔 3월 18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피해호소인 작명의 주인공인 여성의원 3인방, 즉 고민정, 남인순, 진선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영선 캠프에서 맡고 있던 직책을 내려놓은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SNS에 사과문까지 게재했는데, 그 내용이 심금을 울릴 정도였다. "어떻게 해야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해 드릴 수 있을까 지난 몇 개월 동안 끊임없이 고민해 왔습니다.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겨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고민정 의원) "자책감으로, 무력감으로, 통곡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이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진선미 의원) 남인순 의원도 "깊이 사과하고 피해자가 일상생활을 회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라는 말을 전했단다. 사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비판 일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달간 고민하며, 혹은 통곡하며 지냈다는 분들의 낯빛이 하나같이 좋았던데다, 이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게 아닌, 서울시장 선거에서 질 까봐 궁여지책으로 나온 사과인 것 같아서였다. 정말 미안했다면 성추행 사건이 발단이 돼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이들이 참여해선 안됐다. 결정적으로 이들의 사퇴 하루 전, 성추행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열고 저 3인방의 배제를 박영선 후보 측에 촉구한 게 급작스러운 사과의 배경이었으니, 사람들이 사과의 진정성에 의심을 품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진정성이 부족한 사과는 없느니 못한 걸까? 이건 어디까지나 피해자가 결정할 문제지만, 난 그런 사과라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본다. 기자회견에서 3인방의 배제를 촉구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면, 피해자의 무력감이 더 커졌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보궐선거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지금이 선거 국면이 아니었다면 피해자가 아무리 분노에 찬 기자회견을 한들, 확신범에 가까운 저 3인방이 사과를 했을 것 같진 않으니 말이다. 물론 보궐선거는 안 하는 게 최선이다. 고작 1년 남짓 임기가 남은 서울과 부산의 장을 뽑느라 수백억 원의 돈을 써야 하고, 안 해도 됐을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데다, 양측 진영에서 연일 터뜨리는 네거티브로 심신이 피로해지는 등 단점이 한둘이 아니어서다. 그래도 이왕 하는 보궐선거, 그 나름의 장점을 찾아 정신승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몇 가지만 얘기해 본다.
첫째,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재미가 쏠쏠하더라
2020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은 한일전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이 왜 일본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고, 위안부 할머니를 적폐 취급하며 일본과 입장을 같이한 윤미향 의원마저 '한일전'을 외치는 건 기괴하기까지 했지만, 당하는 야당 입장에선 미치고 펄쩍 뛸 입장이었다. 답을 정해놓고 몰아붙이는 거라 뭐라고 변명한들 그게 통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왜구몰이에 재미를 붙였는지 여권은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그 프레임을 쓰려고 했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국민의 힘 박형준 후보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 후보를 보니까 대마도까지 보이는, 아주 뷰가 좋은 75평짜리 아파트를 가지고 있더라." 박 후보가 사는 엘시티가 해운대 해변에 위치했으니 대마도가 보일 수도 있을 터, 신 의원의 왜구몰이는 정말이지 절묘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곧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일본 도쿄에 아파트를 보유하다 선거 직전인 2월에 팔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단지 대마도가 보인다는 이유로 왜구가 되고, 민주당 의원들도 참석했던 자위대 행사에 갔다는 이유로 나경원 전 의원에게 '나베'라고 조롱했다면,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 아파트를 가진 이에겐 진성 왜구라 불러도 할 말이 없어야지 않은가? 박영선 후보는 이명박 정권의 사찰 때문에 남편이 일본으로 도망친 것이라 역공에 나섰지만, 이명박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지 근 10년이 다 될 때까지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은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당황한 채 해명을 늘어놓는 그녀를 보면서 사람들은 묘한 쾌감과 함께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 '이 맛에 왜구몰이를 하는 거구나!'
둘째, 야당이 전열을 정비할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제1야당인 국민의 힘은 존재감이 없었다. 오죽하면 진중권 교수 혼자 야당 역할을 대신한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지지율이 좀 되는 대선후보조차 없었기에, 이대로 대선이 치러진다면 더불어민주당의 재집권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여기서 야당이 반격할 기회를 제공한 게 바로 보궐선거, 특히 오세훈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보여준 단일화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지금의 여론조사대로 서울과 부산을 야당이 탈환한다면 우리나라가 베네주엘라 시즌2가 될까봐 걱정하던 야권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보궐선거가 없었다면 이런 희망도 사치였으리라. 이 밖에도 재한 중국인들의 표심을 알 수 있게 됐으며, 부산시장 선거에 나선 김영춘 후보가 '가덕'이란 호를 만들었다는 것, 박형준 후보 딸의 입시비리 관련 기사를 SNS에서 공유한 조국 전 장관은 역시 멘탈이 남다르다는 것 등등 장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다. 뭐니뭐니해도 선거만한 이벤트는 없구나.
* 광주·전남 대표 정론지 무등일보는 영남일보(경상), 중부일보(경기), 충청투데이(충청)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사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연합 필진 기고를 게재합니다. 해당 기고는 무등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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