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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 뿐인 미봉책, 또 판치는 불법 분양 현수막

입력 2021.03.24. 05:00 댓글 7개
미관·교통안전 저해…거래 교란에 행정비용 소모까지
'광고 효과에 과태료 감수' 풍조 만연…단속도 형식적
행정 처분 비율 매년 2% 미만…"실효적 과태료 부과"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23일 오후 광주 광산구 산월동 한 횡단보도 주변에 아파트 분양 관련 불법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2021.03.23. wisdom21@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광주 도심 곳곳에서 아파트 분양 불법 현수막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미관과 교통 안전을 저해하고 있다.

건설사 등이 분양 수익에 비해 턱없이 적은 과태료에 아랑곳 없이 불법을 일삼지만, 당국은 철거에만 급급하다.

단속을 한층 강화하고 과태료 부과의 실효성을 높여, 불법 현수막을 둘러싼 잘못된 손익 계산을 바로잡아야만 근절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인다.

지난 23일 오후 광주 북구 신용동 신용교차로. 곳곳에 아파트 분양 모집 현수막 20여 개가 내걸려 있었다.

현수막엔 '평당 900만 원대', '당신만 없는 브랜드 아파트 3억', '입주까지 4000만 원' 등 참·거짓을 가리기 힘든 문구가 가득했다.

인접한 광산구 산월동 아파트 단지 주변 도롯가도 마찬가지였다. 한 보행자는 횡단보도에 낮게 걸린 현수막을 피해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때마침 불법광고물 정비단이 1t 트럭과 함께 움직이며 현수막을 떼냈다. 트럭 적재함에는 수거한 현수막이 가득 실려 있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광주 광산구 불법광고물 정비반원이 23일 오후 광산구 산월동 한 도롯가에 내걸린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2021.03.23. wisdom21@newsis.com

불법 현수막은 도심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시야 혼선을 야기해 교통사고 위험을 높인다. 일부 현수막 광고 중엔 '시행예정사' 등 모호한 표현을 쓴 허위·과장도 많아 거래 질서를 왜곡한다는 우려도 있다.

불법 현수막 수거·폐기에 따른 행정 비용도 소모적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불법 현수막과의 전쟁'이 되풀이되는 까닭은 건설사·분양대행업체의 셈법이 한 몫 한다.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수막은 '확실한' 광고 효과가 있어 분양 수익 보장으로 이어진다"며 "제작비·과태료 등을 감안해도 아파트 몇 채 팔리면 훨씬 남는 장사다. 불법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풍조가 만연하다"고 전했다.

당국이 형식적 단속으로 일관, 방치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면엔 일일이 채증(사진 촬영)을 하기 어려운 여건과 법적 한계가 있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른 과태료 부과 대상은 '현수막을 표시 또는 설치한 자'다. 광고주(건설사)보다는 분양대행사 또는 하청업체, 아르바이트생 등이 과태료를 나눠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체납·결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당국은 부과 대상과 '줄다리기'를 하는 실정이다.

정부 표준안은 현수막 면적(㎡) 기준 1장 당 8만 원~80만 원 이상(10㎡ 초과 시 면적당 추가)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규정하고 있다. 1인당 최대 과태료는 500만 원이다.

실상은 납부 능력 등에 따라 하향 조정한다.

더욱이 과태료 규정을 담은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라 자진 납부 기간(2주) 중엔 과태료 20%를 감경할 수 있다. 대행업체가 50% 감경 규정을 역이용, 장애인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는 편법을 쓴 사례도 있었다.

광고주의 과태료 대납 '꼼수'가 판친다지만 뾰쪽한 수도 없다.

일선 공무원은 "수 백장씩 일시에 걸리는 불법 현수막을 액면 그대로 과태료 처분하기 어렵다"며 "그마저도 납부 능력 등을 감안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절충점을 찾게 된다"고 밝혔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23일 오후 광주 북구 신용동 신용교차로 주변에 철거된 불법 현수막이 방치돼 있다. 2021.03.23. wisdom21@newsis.com

통계로도 단속 행정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난다.

24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 전역에서 적발·정비된 불법 광고물은 174만103건이었다. 이 중 3만1814건(1.83%)만 과태료 부과 등 처분이 이뤄졌다. 과태료 부과액은 약 37억2105만 원이었다.

2019년에는 불법 현수막 111만9101건이 적발, 2만2241건(약 27억6636만 원)만 과태료 조치됐다. 2018년에도 151만9695건 중 3만203건(약 51억8983만 원) 만이 행정 처분을 받았다.

최근 3년 연속 적발 건수 대비 과태료 처분 비율이 2%를 밑돌았다. 대부분 불법 현수막을 거둬들이기만 했다는 이야기다.

시는 근절 대책으로 ▲상시정비반 구성·운영(10개반 40명) ▲자동 경고 메시지 발신 통한 자진 철거 유도 ▲수거 보상제 운영 ▲365정비반 민간 용역 시범 운영(광산구) 등을 추진 중이지만, 근본 해법이 되긴 어렵다.

또 다른 공무원은 "불법 현수막 상습 게시 장소·시간대에 맞춰 단속을 체계화하고 엄정 조치해야 한다"며 "과태료 처분의 징벌적 의미가 분명해야 관련 업계의 인식·불법 관행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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