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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가균형발전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나?
입력 2021.03.08. 10:53 수정 2021.03.09. 08:01 댓글 0개문 정권은 무슨 큰 일이 터져야만 균형발전을 외치는 이상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2020년 7월, 문 정권은 그간의 수도권 중심 정책으로 서울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를 완성해야 한다"고 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가덕도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이래도 되는 건가?
이미 월성원전 사건에서 잘 드러났듯이, 잘못은 정권이 저지르고 법적 책임은 애꿎은 공무원들이 지는 게 무슨 법칙처럼 되고 말았다.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하랴. 국토부, 기재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들이 일제히 가덕도신공항특별법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고 나선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국토부는 가덕도신공항에 이미 알려진 7조~11조원보다 최대 4배를 뛰어넘는 규모인 최대 28조6천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으며, 기재부는 예비타당성 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법무부는 "신공항 건설이라는 개별·구체적 사건만을 특정해 다른 국책사업과 비교할 경우 적법절차 및 평등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런 반대를 잠재우려는 듯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직접 가덕도 방문에 나섰다. 당·정·청 핵심 인사 20여 명을 대동한 문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수도권과 경쟁할 광역권을 만들어야 한다.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 계획에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현시키자"고 했다. 문 대통령이 "국토부가 '역할에 대한 의지'와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사실상 국토부를 질책하자,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국토부가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한 것처럼 비쳐 송구하다"고 했다.
야당은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명백한 선거개입'이라고 반발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저는 어제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이 나라가 나라답게 가고 있나',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문재인 정부표 매표 공항'이라며 "이런 엄청난 사업을 비전문가 집단인 국회에서 전문가적 판단을 무시하고 강행하는 것은 후대에 죄를 짓는 행위"라고 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은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언론은 가덕도신공항 덕분에 부산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고 보도했으니, 민주당은 흡족했을 게다. 선거에 이기는 것만이 정의라면 그 흡족함에 박수를 보내도 좋겠지만, '후대에 죄를 짓는 행위'의 가능성이 농후한 승리에 대해선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나는 지방민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부산 시민들이 가덕도신공항을 간절히 바라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한국의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이 전북의 새만금간척사업(새만금)에 대해 맹폭격을 퍼부었을 때 나는 강한 반론을 편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전북인을 '탐욕스러운 토건 동맹세력'의 농간에 놀아난, 순진하지만 어리석은 피해자처럼 묘사한 것에 화가 치밀었다. 모두 다 서울이나 서울 인근에 사는 그 유명인사들이 지방의 문제에 대해 같은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이해와 공감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새만금의 진행과정에 대해 잘 아는 일부 전북인들이 오늘날 하는 말은 '30여년 묵은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기극의 가능성이나 새만금의 문제를 전혀 몰라서 전북인들이 새만금을 지지했던 건 아니다. 전북발전을 위해 기대를 걸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낙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처지에선 그 무엇이 됐건 중앙정부가 적극적인 개발을 하겠다고 천명한 공언이 중요했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 지역에 득이 될 게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자 했던 것이다.
새만금이 선거용으로 출발했듯이, 가덕도신공항도 선거용이라는 전철을 밟고 있다. 선거와 무관하게 평소 전반적인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할 수는 없는가? 문 정권에겐 그럴 뜻이 없는 것 같다. 나의 평소 지론이지만, 문 정권은 인구집중의 폐해로 수도권 주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수도권 정권'이기 때문이다. 부산이 인천의 추격에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마저 내줘야 할 위기 상황에 내몰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가덕도신공항이 새만금 못지 않게 문제가 많은 사기극일 수 있다고 의심할지라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부산시민들이 많을 게다.
문 정권이 '수도권 정권'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있을 게다. 지난해 10월 한국판 뉴딜 사업에 지역균형 분야를 추가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업 총액은 그대로 둔 채 지역균형이라는 명목만 추가한 게 아닌가. 아니 그게 문제될 건 없다. 뉴딜 사업 가운데 절반 가량이 지방에서 집행된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지역균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걸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인구 집중이다. 문 정권은 이미 3기 신도시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 건설 등 수도권 중심의 정책을 폄으로써 수도권에 인구가 더욱 몰리게끔 했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편 정책이라는 반론 역시 가능하겠지만, 정책은 상당 부분 '신호'의 문제가 아닌가. 문 정권은 균형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그 어떤 신호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집권한지 3년 5개월이 지나서야 달랑 '지역균형 뉴딜' 하나를 내놓은 것이다.
문 정권은 무슨 큰 일이 터져야만 균형발전을 외치는 이상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2020년 7월, 문 정권은 그간의 수도권 중심 정책으로 서울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를 완성해야 한다"고 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가덕도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이래도 되는 건가?
문 대통령은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균형발전을 앞세워 '가슴이 뛴다'고 고백했는데, 그간 수없이 외쳐져 온 '지방소멸'에 대해선 그 뛰는 가슴이 왜 그렇게 평온했었는지 의문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국가균형발전을 촉진할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회에 참석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느냐?"고 외치고,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국가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의 생존 문제다. 이를 방해하는 것이야말로 고발당해야 할 반헌법적 행위다"고 큰소리를 친다. 균형발전이 '대한민국의 생존 문제'라는 걸 뒤늦게나마 인정해준 것에 감사드려야 할까? 아니면 균형발전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도 되느냐고 따져야 할까?
*광주·전남 대표 정론지 무등일보는 영남일보(경상), 중부일보(경기), 충청투데이(충청)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사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연합 필진 기고를 게재합니다. 해당 기고는 무등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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