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우리가 다르다는 것은

입력 2021.03.01. 14:19 수정 2021.03.01. 14:54 댓글 0개
류승원 경제인의창 광주·전남콘크리트조합 이사장
류승원 광주전남 콘크리트 조합 이사장

최근 정치인들의 TV토론이나 불특정인들의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무시무시한 표현을 동원해 상대방이 틀렸다고 토로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세상에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이 있다. 우리가 흔히 차별과 다양성에 대해 논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다르다'와 '틀리다'인데 전자는 형용사고 후자는 동사로, 이 두 단어는 품사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이분법적 사고로 점철된 현대사회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이다. 자신과 생각이 같지 않으면 대부분 상대의 주장을 틀림으로 단정하는 것은 이 단어들의 오용에서 비롯된다. 이는 편견과 감정적 논리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혹자는 일본 강점기와 군부 독재를 거치면서 생긴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사고와 행동을 요구받는 과정에서 생긴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특성 중 하나로 비하해 그 근거를 찾기도 하지만,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동서양을 망라해 국가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수많은 전쟁과 갈등의 원인이 이 두 단어의 고의적(?) 남발에서 시작됐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큰 틀에서 봤을 때 현재까지 진행형인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역사나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의 이념적 대립과 거기에 기인한 아픔이 그 극단적 예가 될 것이다.

세상에는 민족이나 국가 그리고 그 속에 속한 사람들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모두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역사적 교훈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반복해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답습하며 살고 있지 않나 고민해 봐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보면 다양성과 자유로운 토론을 중요한 논제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 주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문제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 짓는 핵심 키워드다. 지금도 시대의 관습과 사회적 인식을 통해 형성된 특정 여론은 여전히 보편적 절대 권력으로서 소수의 의견을 틀렸다고 단정해 그들만의 주관을 주입 시킨다. 그래서 밀은 다양성의 담보를 자유로운 토론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고 수많은 토론은 합의를 형성하게 된다고 했다.

인류의 발전은 그렇게 진행돼왔다. 상대의 의견에 대한 과감한 수용은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현재의 부작용을 시스템의 한계로 규정짓고 나만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는 곧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를 틀렸다는 관점으로 보지 말고 또 다른 다양성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없는 것 중 하나가 정답이라고 한다. 때때로 인생이란 해답을 찾으며 사는 과정이라지만, 그 시대의 가치와 상황에 따라 정답이 바뀌게 되니 상대방과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지금보다 더 성숙한 복지사회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그 역시 한가지의 정답을 고집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입장과 생각이 다르다. 이제부터라도 옳고 그름의 문제는 수학책에서나 찾도록 하자.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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