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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우려 적어도 다 죽이나"···AI 살처분에 뿔난 농가

입력 2021.02.11. 05:00 댓글 0개
작년 11월 발생 이래 닭·오리 등 2751만 마리 살처분
"지형·사육방식·방역수준 고려 없이 무작정 잡아" 비판
정부 "향후 탄력적 살처분 기준 조정…종합 검토 중"

[세종=뉴시스] 위용성 기자 = '2750만8000마리'

작년 11월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3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그사이 가금류 살처분 규모는 3000만 마리에 육박하면서 농가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예방적 살처분' 기준을 3㎞로 삼아 발생 농장 반경 내 닭·오리를 과도하게 잡고 있다는 것이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경기 화성 산안마을 살처분 반대 화성시민대책위원회, 환경농업단체연합회, 동물권행동 카라 등 단체들은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무차별 살처분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가금류 농장들은 AI 바이러스가 농장에 침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인근 농장에서 발생 했을 때 행정당국으로부터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받게 되는 현실을 더 두려워한다"며 "실제 이번 현황을 보면 직접 발생한 농장보다 수배에 이르는 농장과 가축이 전염되지 않았음에도 예방적 살처분이란 명목으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3㎞내에 위치한 농장이라도 지리적 조건, 사육방식이나 환경, 자체 방역 시스템 수준 등을 고려해 선택적으로 살처분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높은 산이나 강이 가로막고 있는 경우 농장 간 수평 전파가 이뤄지기 힘든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방역대 안에 있다는 이유로 일률적인 살처분을 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가축전염병 예방이란 사전에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질병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라며 "정부는 예방에 초점을 맞춘 방역이 아니라 걸릴 가능성이 있는 가축 범위를 일률적 반경 거리로 확대해 미리 없애버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화성의 동물복지농장인 산안마을은 이 같은 '살처분 논란'에서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대표 사례다. 지난달 22일 산안마을에서 1.8㎞ 떨어진 인근 농장에서 AI가 발생하면서 당국으로부터 예방적 살처분 행정명령을 받았다. 신안마을은 이를 거부했지만 당국은 계도기간을 둔 후 살처분을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농장 관계자는 그 이후 출하되지 못한 유정란이 매일 2만여 개씩 쌓여 50일째가 되는 11일 100만개가 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간 이 지역에서 추가 AI 발생은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살처분에 예외는 없다"는 입장이다. 강도 높은 선제 방역이 있어야 수평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예방적 살처분 기준은 2017년 '최악의 AI'를 겪은 뒤 2018년 9월 기존 500m에서 3㎞로 확장됐다.

작년 11월26일 정읍 육용오리 농장을 시작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고병원성 AI는 지난 10일 기준 총 88개 농장에서 발생했다. 그동안 살처분한 가금류는 ▲육용오리 175만8000마리 ▲종오리 14만7000마리 ▲산란계 1449만9000마리 ▲육계 700만1000마리 ▲종계 130만2000마리 ▲토종닭 84만7000마리 ▲메추리 등 기타 195만4000마리로 총 2750만8000마리에 이른다.

현재도 발생 의심사례들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만큼 향후 살처분 마릿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4년 전인 2016년 겨울에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이듬해 4월까지 가금 농가를 쑥대밭으로 만든 바 있다. 전국 946개 농가에서 기르는 닭·오리·메추리 등 3787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당시 닭은 전체 사육마릿수 대비 20.3%를, 오리는 37.9%를 땅에 묻은 셈이다.

일각에선 살처분 대신 백신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AI 백신이 변이가 많아 효과 대비 안전성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농가 부담이나 동물권 보호 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늘면서 방역당국도 향후 살처분 기준 조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AI가 확산되고 있는 국면인 만큼 당장 조정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오염도나 철새 이동 등 여러가지 요인들을 검토해서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중앙가축방역심의회 심의를 거쳐 살처분 범위를 조금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며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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