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금전으로 용서를 대신하는 형사공탁 운영의 묘 살려야

입력 2021.02.08. 14:14 수정 2021.02.09. 19:23 댓글 0개
이광원 법조칼럼 변호사 (조선희 법률사무소)

2007년 이창동 감독이 만든 영화 '밀양'은 충격이었다. 도대체 인간의 '용서'라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가하는 고통스러운 질문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남편의 고향 밀양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신애의 삶은 아들의 죽음으로 철저히 파괴되고 만다. 하나뿐인 아들이 유괴돼 살해당한 것이다.

그래도 주인공 신애는 종교에 귀의해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고자 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범인은 "교도소 내에서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었다"고 되려 큰소리다. 신애는 충격을 받고 절규한다.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필자는 직업상 여러 형태의 형사사건을 접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만한 합의를 유도할 때도 흔하다. 그런데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해자가 "돈으로 끝내겠다"는 고자세를 보이거나 피해자가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해 합의가 깨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특히 가해자가 금전적 보상만 하면 그만이다는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일 때는 대부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가해자가 뻔뻔한 태도를 보일 때는 아무리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할 방법이 없게 되는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합의가 불발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피해자의 피해를 보상할 정도의 돈을 법원에 맡겨 해결하게 된다. 이런 절차를 '형사 공탁'이라고 한다. 형사공탁의 경우 피해자가 맡긴 금액이 성에 차지는 않지만 법원이 가해자의 공탁금액을 보고 가해자가 어느 정도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 했는지를 보고 형을 깎아주게 된다.

그런데 현행 형사공탁의 경우는 공탁서에 피해자의 성명·주소·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법이 이러니 가해자가 피해자 인적사항을 확인하지 못하면 공탁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럴 경우 피고인은 형의 감경을 받지 못하고, 피해자도 금전적인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는 2020년 12월 8일 새로운 공탁법 제 5조의2(형사공탁의 특례)를 신설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대신해 해당 형사사건의 재판이 계속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사건명, 조서, 진술서, 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명칭을 기재하고 공탁할 수 있다'는 특례를 만들었다. 새로운 공탁법은 오는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된 공탁법이 시행되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몰라도 형사 공탁을 할 수 있으며, 피해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정보를 가해자에게 제공하지 않고도 공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법조인 한사람으로서 형사 공탁제도 개선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바뀐 형사공탁제도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도 가해자가 형사공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이 용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면, 피해자는 법원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신애는 큰 맘 먹고 아들 살해범을 용서하려 한다. 용서에 앞서 그가 바라는 것은 범인의 진실한 사죄의 한마디 였다. 그러나 엉뚱하게 하나님에게서 용서를 받았다니 도대체 누가 누구를 용서 했다는 말인가. 공탁 제도도 마찬가지다. 법원에 금전적 형사공탁을 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용서한 듯 형을 깎아준다면 납득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달랠 수 있을까. 앞으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탁법의 개정취지를 살리면서도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반영하는 운영의 묘를 살리는데 법조인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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