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대한민국의 ‘마니 풀리테’를…

입력 2017.10.11. 16:20 수정 2017.10.12. 08:27 댓글 0개

지금으로부터 25년전인 1992년 이탈리아에 국민적 영웅이 나타났다.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Antonio Di pietro)검사였다. 피에트로 검사는 오래된 부패 청산의 일선에 서면서 전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지지를 받았다. 그가 주도한 검찰 수사는 같은 해 2월17일 사회당 경리국장의 집을 수색해 현금 700만리라(우리돈 370만원)를 찾아내 압수하면서 시작됐다.

사회당에 정치자금을 대오던 밀라노의 한 청소대행업체가 사법당국에 고소하면서 진행된 수사에 따라 정·재계가 총체적으로 불법의 고리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다. 수사 1년여만에 1천여명의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가 체포되고 전체 국회의원의 25%에 달하는 177명 또한 조사를 비켜가지 못했다. 무려 6천여명의 인사가 수사 대상에 올라 그 가운데 2천993명이 부패혐의로 체포되었다. 수사 대상이었던 정·재계 인물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더럽지 않은 손은 없다‘며 발뺌하던 사회당 출신 총리 베티노 크락시(Bettino Craxi)조차도 불법 정치자금 혐의가 알려져 해외로 망명하는 등 부패한 정·재계, 고위공직자들의 ‘불법공동체’는 실체를 드러냈다. 피에트로의 뒤를 이은 게라르도 콜롬보(Gherardo colombo)검사 역시 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이어진 수사 는 이탈리아 정치·사회 체제에 변혁의 큰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선거구제가 바뀌고 비례대표제가 폐지됐다. 각성한 유권자들은 2년 뒤 선거에서 정치 신인들을 중심으로 한 신당 포르자에 하원 의석(630석)의 절반을 훨씬 넘는 366석을 몰아주었다. 이로써 기득 정당이 몰락하고 안드레오티 총리가 물러나는 등 정계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부패추방’운동으로 일컬어지는 ‘마니 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는 그렇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많은 압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았던 ‘마니 풀리테’는 소신 뚜렷한 검사와 전 국민적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다.

지난해 촛불 혁명을 바탕으로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적폐청산과 개혁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된 부패(적폐)의 주역이나 적극적 부역세력들의 후안무치한 반발의 강도도 그 어느 때보다 심해지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적폐청산과 개혁’은 사정(司正)이나 정치보복이 아니다”고 밝혔다. “권력기관과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누적돼 온 관행을 혁신하는 것은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마니 풀리테’가 빛을 발하려면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지지가 다시 한번 ‘정의 바로 세우기’라는 총합으로 모아져야 할 때다.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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