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진 나를 매질하라’
입력 2011.04.07. 00:00 댓글 0개 무른 것들은 모두 보내고 단단함만 남았다. 세상의 풍상을 모두 겪어내고 몸안의 눈물 한 방울까지 모두 내어 보낸 상태. 그래서 더 이상 변할 것 없는, 더 이상 물러설 것 없는 상태. 그런 경지에서라면 어떤 흔들림도 없겠다.
이재칠 작가는 말라 비틀어진 ‘명태(북어)’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명태(북어)’들은 부릅뜬 두 눈으로 말한다. “달궈진 나를 매질하라.”
롯데갤러리 광주점에서 올해 창작지원전의 첫 번째 초대로 이재칠 작가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18일까지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2000년에 열렸던 첫 개인전 이후 10년 만에 갖는 작품전으로 회화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첫 개인전에서 ‘삶의 리얼리티 찾기’를 화두로 사람살이의 의미와 행복,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한 인간사의 단면을 가깝게 포착해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좀 달라진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
작가는 ‘북어’를 그린다. 작가는 해풍에 말라 붙은 북어를 보며, 육신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숨쉬는 듯한 강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강한 눈빛은 그의 그림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발언한다. 일종의 우화 같다. 짤막 짤막하게 붙은 글들은 삶에 대한 은유다. ‘가시같은 봄이 살점을 꿴다’ ‘달을 버리고 눈을 뽑다’ ‘달을 삼키고 혀를 뽑다’ ‘달궈진 나를 매질하라’ ‘어머니의 칼’….
눈을 부릅뜬 북어처럼 작가는 화려한 형식이나 기술을 구사하지 않는다. 크레파스를 사용한 드로잉 기법이다. 작가는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쉬운 재료’와 기법을 이야기한다. 대중적인 재료에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는 작가의 의도는 형식보다 내용의 감동을 강조한다.
“변화하는 모든 실체는 아름답다. ‘없어져 가는’ 해체와 소멸은 언뜻 무질서의 혼돈처럼 느낄 수 있겠고, 감성적 증원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변화의 ‘자연스러운 본질’이며, 새로운 존재의 탄생과 생장을 위한 것이다.”
이번 전시의 평론을 담당한 천승세(소설가·한국작가회의 고문)는 이재칠의 ‘북어’를 생명력의 은유로 해석한다.
롯데갤러리는 “강한 선과 메시지로만 구성된 이재칠의 드로잉 작업은 내용 면에서 함축적인 에너지를 수반해야 하며, 그만큼 예리한 관점이 필요하다”며 “미끈하거나 혹은 장식적인 미감은 아니지만 작가의 관점이 순수하고 선명하게 드러나며, 회화 본연의 독해적 맛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형형한 눈빛의 북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같다. 해풍에 마른 육신, 그 한 가운데 벌겋게 닳아오르는 붉은 기운. ‘가슴에 남은 꽃 하나’ 품고 있는 북어처럼 가고 싶은 마음일 듯. 문의 062-221-1808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 [영화평 300]그렇게 내 이름을 찾았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4월 셋째주 신작과 최근 개봉작을 소개한다.◇거룩하게 숭고하게 찾은 내 이름…정순'정순'은 불법 촬영·유포 피해자에 관한 얘기다. 다만 이 영화가 하려는 일은 성폭력 피해자가 일사을 회복해 가는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정순'은 영상 속에서 속옷만 입고 춤을 추는 여성으로 대상화된 한 인간이 존엄을 되찾는 과정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직장에선 이모로, 집에선 엄마로 대상화 된 존재가 자기 이름을 쟁취하는 모습을 담으려 한다. 어쩌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사회 보호 바깥에 있게 된 여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름을 바로 세우려는 그 안간힘은 거룩해보이기까지 하다.◇아직도 웃기고 여전히 귀엽네…쿵푸팬더4푸바오를 눈물로 떠나 보낸 우리를 달래주기 위해 세상에서 제일 웃긴 팬더가 돌아온다. 바로 쿵푸하는 팬더 포. '쿵푸팬더4'는 탄탄한 초식(招式)을 바탕으로 한 내공을 보여준다. 첫 번째 영화가 나온지 15년이 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포를 전사에서 지도자로 격상하려는 출발점부터 납득이 간다. 1편 빌런 타이렁을 비롯해 역대 쿵푸 마스터를 모두 등장시키는 클라이맥스 역시 포를 졸업시키는 합당하고 흐뭇한 방식이다. 코미디와 액션과 반전을 정확한 시점에 배치한 중간 과정 역시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다. 물론 새로운 스토리라고 할 수 없고 캐릭터 역시 예전만큼 신선하지는 않다는 건 단점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이 작품을 보지 않게 할 정도로 큰 약점은 아니다.◇팬서비스로 만족…골드핑거'무간도' 시리즈 각본을 쓴 장웬지앙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평작 이상으로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건 양조위와 유덕화 때문이다. '무간도'를 함께한 두 배우는 '골드핑거'에서 20년만에 다시 만났다. 홍콩 대중문화 전성기를 이끌었고 국내에도 열렬한 팬을 가진 이들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결코 낡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다. 양조위는 전에 보여준 적 없는 징글징글함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고, 유덕화는 특유의 서늘함으로 관객을 추억에 젖게 한다. 두 전설이 오래 연기하길 바랄 뿐 뭘 더 바라겠는가.◇당신을 보기 위해 난 오늘도 파묘 한다…키메라그저 그런 영화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내보이는 너무 뻔한 로맨스에 질린 관객에게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키메라'는 완벽에 가까운 대체재다. 감각적이면서 지적이다. 낭만에 취해 있지만 이성을 잃지 않는다. 우스꽝스럽다가도 이내 애달프다. 그렇게 두루 아우르는 것은 물론이고 깊이 파들어간다. 신화를 차용하고 이탈리아 영화를 오마주하며 할리우드를 비웃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키메라'는 어쩔 수 없이 로맨스 영화다. 도굴꾼 아르투는 한 여인을 향한 사랑만이, 오직 그 사랑만이 자신을 존재케 하기에 기어코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독야청청…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모두가 현재 일본 영화계를 암흑기로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찬란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지지부진하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일본 영화를 무시할 순 없다. 바로 이 사람 때문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하마구치 감독은 현재 전 세계 영화 예술 최전선에서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증거다. 이 고요한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스크린 밖으로 아우라를 내뿜다가 순식간에 관객을 집어삼킨다. 이건 하마구치 감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마력이다. 이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곧 일본 영화라고.◇어그로 시대에 부쳐…댓글부대단점은 있다. 그래도 '댓글부대'는 귀하다. 한국영화엔 이상한 콤플렉스가 있다. 현재 시대상에 관해 얘기하는 걸 이상할 정도로 겁낸다는 것. 그러나 안국진 감독에겐 이런 콤플렉스가 없다. 안 감독은 데뷔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에서도 'n포 세대'를 직격하지 않았나. 이번엔 가장 시급한 키워드인 탈(脫)진실이다. 사실과 진실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게 된 '가짜 뉴스' 시대 말이다. '댓글부대'는 기자를 인터넷 어그로꾼으로, 기사를 온라인 게시물로 전락시키며 지금 이 시대를 풍자한다.◎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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