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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상황일지까지 조작···신군부의 치밀한 5·18 진실 감추기

입력 2017.10.11. 14:58 수정 2017.10.11. 15:22 댓글 0개

【무안=뉴시스】 배동민 기자 =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자위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경찰 상황일지까지 조작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되면서 신군부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제대로 된 5·18 진실 규명을 위해 당시 원본 문서와 기록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1일 전남경찰청은 5·18 직후 치안본부에서 작성한 '전남사태 관계 기록' 중 '예비군 무기 탄약 피탈 상황' 일지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경찰 감찰 자료로, 5·18 이후 직원들에 대한 '징계' 등의 근거로 활용됐기 때문에 사실 관계가 가장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일지에는 전남 나주 남평지서와 반남지서에 대한 시민들의 무기 및 탄약 피탈 일시가 5월21일 오후 1시30분과 같은 날 오후 5시40분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보안사가 보존하고 있는 '전남도경 상황일지'에는 두 곳의 무기 피탈 시기가 오전 8~9시로 돼 있다. 이 상황일지의 내용은 지난 2007년 국방부과거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에도 그대로 인용됐다.

5월21일 낮 12시59분께 전남도청 앞에서는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자행됐다. 이 때문에 신군부 측은 '시민들이 먼저 무장했고 자위권 차원에서 군의 발포가 시작됐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에 대해 경찰은 보안사의 '전남도경 상황일지'가 조작됐다고 결론내렸다.

경찰이 보유하고 있지 않던 '경찰 장갑차 피탈'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는 점, 생산 기관과 년도 미기재, 표지와 본문 내용과 작성 방식이 다른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특히 '全南道警(전남도경)'의 '경'을 '공경할 경(敬)'으로 적은 상황일지 표지를 예로 들었다. 경찰관이라면 '경(警)'을 '경(敬)'으로 잘못 쓸 리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도경'이라는 표현은 경찰 내부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 외부 기관이 경찰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라고 설명했다. 이어 "1988년 5·18 청문회를 앞두고 군 내부에 설치된 '511 분석반'이 '시민들에 대한 군의 발포가 자위권 행사 차원의 정당한 행위'라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조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같은 이유로 경찰은 광산 하남파출소와 함평 신광지서의 무기 피탈도 사실과 다르게 조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신군부가 5·18 이후 군의 기록 등을 조작·왜곡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505보안부대의 경우 5월19일 계엄군의 첫 발포로 인한 김영찬(당시 조대부고생)군의 총상을 '불순세력의 선동수법'으로 조작했다.

당시 보안사가 보고받은 내용에는 '5월19일 발포 사실 전무했음을 감안할 때, 고교생(김영찬 군)은 특정 데모세력에 의해 무성 권총으로 사격, 계엄군이 발포한 것으로 선동키 위한 지능적 수법'이라고 적혀 있다.

또 505보안부대가 작성한 '광주소요사태(21-57)문서'에는 5월20일 오후 10시55분 '폭도들의 기습으로 7공수 대원 7명이 총상을 입은 것'으로 돼 있다. 이날 밤 광주역 앞에서는 계엄군의 사격으로 첫 사망자가 나왔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당시 시민들은 총을 들지 않았다"며 "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하기 위해 문서 등을 조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북한군 개입설도 5·18 조작과 왜곡의 사례로 꼽았다.

경찰은 80년 5월 당시 광주에는 130여명의 정보·보안 형사들이 활동했고 시내 주요 지점 23개소에 정보센터를 운영했는데 북한 관련 첩보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국가기획안전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전남경찰국이 작성한 '광주사태진상' 등 문서에도 북한군 관련 내용은 없다.

오히려 '나주와 화순 등지에서 시민군들이 간첩용의자를 잡아 경찰에 신고·인계했고 서부서 강경섭이 간첩으로 오인 받아 끌려간 사실 등 시민군들이 당시 대공 용의점을 가진 사람을 내부적으로 적발하는 활동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시민군들이 지속적으로 광주교도소를 공격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경찰은 "당시 광주 교도소의 위치가 담양으로 통하는 지방도로와 고속 도로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교도소 경계 부대에 의해 시민군의 담양권 진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됐으며 담양권으로 진출하려는 시민군이나 일반 시민들의 활동을 교도소 공격으로 오인했거나 의도적으로 과장·왜곡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5·18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관계 기관의 원본 자료 공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남 경찰 역시 "계엄정국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계엄군의 과오나 잘못을 기록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며 "시위대와 시민의 부정적인 면은 과장, 부각되거나 왜곡돼 기록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기록들에 의해 밝혀지거나 인용된 내용들에 대해서도 오류와 진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5·18의 진상 규명은 관련자들의 증언과 참여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수만 전 유족회장도"3·7·11공수의 전투상보나 상황일지를 보면 임무 내용만 다를 뿐 작성 형식이나 글씨체가 똑같아 내용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군 기록이 방대하다. 어떤 기록이 왜곡되고 조작됐는지 밝혀야만 80년 5월의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gugg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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