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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유튜브 종행무진] <5> 말레나와 신정아

입력 2011.04.06. 00:00 댓글 0개
`나쁜 약자’를 공격하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로버트 카파가 파리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아이를 안고 가는 여인은 ‘나치 부역자’이다.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가 독일군이었을 것이다. 여인은 성난 군중들에 의해 머리를 깎였고, 린치를 당했는가 하면,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들으며 위험하게 걷고 있다.
 이 사진에는 ‘겉으로는’ 나치에 부역하지 않은 다른 프랑스 사람들의 위선이 담겨 있다. ‘나쁜 약자’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불완전한 윤리를 증명하려는, 참으로 추악한 짓이다.
 2차 대전 당시 나치는 유태인과 집시들을 잡아들여 가스실로 데려가 죽이는 데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IBM은 인명 자료를 코드화시킬 수 있는 펀치카드 기술을 나치에게 판매했다. IBM은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가톨릭 교회가 반유태주의 발생과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나치를 도운 신부들도 적지 않다. 생전에 교황 바오로 2세는 공식적으로 사죄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교황이나 신부가 광장에서 군중들에게 얻어맞은 적은 없다.
 이렇듯 나쁜 강자는 건재하다.
 생각해 보면, 유럽의 보통 사람들이 나치의 유태인 탄압에 동의했다는 것은 그다지 유별난 진실도 아니다. 역사는 보통 사람들 밖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이 역사의 일부분이다. 나치의 광기를 히틀러 한 사람의 괴팍함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등장한 정치세력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전체주의라는 씨앗이 싹 틀 수 있는 배경을 ‘대중’의 등장에서 찾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의 의지가 히틀러를 통해 발현됐고, 보통사람들이 각성했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중의 무지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은 매우 영리하다. 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붙이면 다수의 여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한 두 사람을 매국노로 낙인 찍으면 수백명에 달하는 매국노들의 안전이 담보된다. 나를 감추기 위해 어떤 사람의 악을 절대화시키고, 그를 공격한다.
 이탈리아 영화 ‘말레나’는 군중들의 이런 속성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모니카 벨루치는 머리카락을 가위질 당하고, 옷이 찢기고, 가혹하게 폭행당한다.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독일장교를 도왔을 뿐이다. 모니카 벨루치를 폭행함으로써 다른 여인들의 ‘순결’이 증명된다. 진짜 목적은 거기에 있다.
 몇 해 전 ‘신정아 사건’이란 게 있었다. 신정아를 주인공으로 한 ‘스캔들’이었는데 놀랍게도 신정아 주변의 ‘남자’들은, (변양균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 남자들을 까발리지도 못하면서 언론과 세상 사람들은 신정아가 ‘몸로비’를 했다고 떠들어 댔다.
 신정아가 쓴 ‘4001’은 그 동안 없었던 ‘남자들’을 등장시킨 책이다. 세간의 관심은, 책의 내용이 과연 사실인지에 모아진다. 아무렴 어떠랴, 사건이 막 불거졌을 때,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껏 부풀려진 채로 신정아스토리는 만들어졌고, 이를 토대로 신정아는 뭇매를 맞았다. 책 속의 진술을 증명하라고 누가 신정아에게 말할 수 있을까.
 나치의 애인에게 돌을 던지기는 쉽다. 신정아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도 쉽다. 이런 식으로 쉬운 일들은 그 이면에 다른 맥락을 내장하고 있다. 그들을 화형시킴으로써 만인들이 속죄를 얻으려 한다. 내 삶의 위안을, 정직함의 알리바이 따위를 ‘조금 나쁜 약자’를 공격함으로써 얻으려는 것이다. 강자에게는 덤비지 못하면서….
 검색어 ‘말레나’를 넣으면 모니카 벨루치가 폭행당하는 장면이 맨 상단에 나온다. 신정아로 검색하면 ‘후 플러스 신정아 사건 그 후 국세청 진실게임’이라는 MBC다큐멘터리가 5개로 나뉘어서 리스트 된다. 말레나와 신정아, 두 여인 잔혹사는 근본에서 동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정우 <광주 광산구청 정책홍보팀장>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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