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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자기 정치'에 여념 없는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1.01.26. 05:30 댓글 0개정권에 실망했다고 무조건 야당에 표 안줘
과거 문법 벗어나 시대정신 읽고 반영해야
[서울=뉴시스] 박미영 기자 = 불경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인적이 드물었던 전통시장이 최근 정치인들로 문정성시를 이루고 있다. '선거'라는 엔딩을 예측하기 어려운 드라마가 시작됐단 신호다.
후보들은 시장에서 어묵 꼬치를 베어물고, 상인들이 건네는 물건들을 사고 검정 봉지를 채운다. 같은 시각 또 다른 누군가는 쪽방촌을 돌고, 누군가는 코로나 선별진료소나 폐업 직전의 헬스장을 찾는다.
여야가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1차 경선 대진표를 사실상 확정하면서 '전장'이 여의도에서 '표밭'으로 옮겨 오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후보들은 저마다 코로나 파고를 넘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시민들의 절규에 공감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되돌려주겠노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은 아직 여의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국민에 힘'이 되는 시장이 되겠다면서도 집토끼를 잡는데에, 선거 후 '플랜B'에 열중하는 모양새니 말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14명이나 도전장을 낸 치열한 경선 게임에서 '당심(黨心)'이 공천을 좌우하는 데다, '보수가 미는 중도후보'라는 콘셉트를 잡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야권후보 단일화 게임도 해야하는 여건은 이해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1차 경선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드라마다. 예비 경선에서 4명의 주자를 추리게 되는데, 대중 인지도나 대표성 면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은 일단 '넘사벽'이다.
이 '빅2' 중에 누가 당원들의 최종 선택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안 대표를 상대로 던진 '조건부 출마'로 오 전 시장이 치명타를 입은 상황에서, 여성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나 후보에게 판세가 기울어져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런 점에선 나 전 의원이 자신을 '보수의 적자'로 내세우며 불붙인 노선 투쟁, 이른바 '짜장면' 논쟁은 이번 선거의 큰 숲을 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막판까지 단일화 줄다리기를 이어가야할지도 모르는 이번 선거에서는 핵심 지지층을 뛰어 넘는 중도 확장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짜장면론'은 당내 경선에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필요한 전략일지 모르지만 야권 단일화 과정은 물론 이후 최종 후보가 될 경우엔 악수(惡手)로 작용할 수 있다.
"1년 4계절이 한 번은 지나야 서울시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다"는 오 전시장의 '사계절론'과 '대선 불출마' 배수진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장 경험을 무기로 내세우면서 당내 경쟁자인 나 전 의원과 안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발언이지만 지난 2011년 당시 무상 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시장 자리를 내놓은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이란 점,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가 시정 경험 운운하는 건 유권자의 마음을 잡기엔 역부족이다.
중도층이 보기엔 나 전 의원의 짜장면론도, 오 전 시장의 사계절론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마치 '구원투수'인냥 하는 안 대표도 모두 뻔하고 고루한 '자기 정치'일 뿐이다.
정작 본선에서 중도층을 공략해야 할 땐 지금의 이런 자기 정치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여기에 후보들간 흠집내기까지 더해지면 '저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 사람이 변하나' 하며 다가 오려던 민심도 돌아서게 마련이다.
오죽했으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외환 위기로 한 번, 코로나로 또 한 번 양극화가 되면서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옛날 사고로 선거운동을 한다"고 했을까. 10년 전의 문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그때 그 사람들'을 반기지 않는 측면도 이런 이유다.
코로나 시대 유권자들에겐 이념적 슬로건도, 시정 경험도 그다지 중요치 않다. '내 삶을 어떻게 원상회복시킬 것인가'하는 질문에 믿을 만한 답을 주는 시장을 원한다.
과거엔 반(反)정권만 외치면 선거에서 주효했다. 그러나 현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해서 상대적으로 비토 정서가 강한 국민의힘을 선택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권의 폭주를 비난하기 전에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자신들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아가 더 이상 고정 지지층에만 의존하지 말고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미래에 대한 과학적인 예측에 근거해 경쟁자조차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념적 경직성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을 반영한 유연성을 보여 줄 때만이 외연 확장이 가능하다.
'나(유권자)는 진보, 혹은 중도인데 왜 보수에 끌리지?'하는 마음이 들게 할 수 있는 대안과 정책을 내놓을 때 승리의 여신도 손짓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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