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40분 걸어 겨우 한끼···혹한·코로나에 내몰리는 노숙인

입력 2021.01.24. 15:03 수정 2021.01.24. 15:03 댓글 0개
무료급식소 문 닫아 결식 우려
코로나로 실직·파산해 거리로
신분 노출, 시설 입소 꺼리기도
지자체 신뢰 바탕한 정책 필요
천주교 광주대교구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노숙인돌봄사업단이 광주 동구 금남공원에서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노숙인돌봄사업단은 코로나19로 시내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자 자체 예산을 편성해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사진=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제공

바닥에 나뒹굴던 낙엽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전날 내린 눈은 거의 녹아 흔적조차 없었지만 바람이 유독 찼다. 지난 19일 오후 5시 광주 동구 호남동성당 뒤편에 하나 둘 사람이 모였다.

"어서오세요" 천주교 광주대교구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노숙인돌봄단(천주교 노숙인돌봄단) 자원봉사자가 김수진(가명·72) 할머니에게 따뜻한 인사 한마디와 함께 도시락을 건넸다. 거뭇한 마스크 위로 김 할머니의 눈이 초승달처럼 접혔다. 그는 자원봉사자와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곤 돌아섰다. 다리 한쪽을 절뚝이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이곳까지 매일) 40분 정도 걸어서 온다"고 짧게 답했다.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김광균 시인의 시를 줄줄 읊었다. 그는 "시와 그림을 좋아한다. 20대 때만해도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꿈을 꿨다"고 했다. 이후의 삶은 고단했다. 이곳저곳에서 짧은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노숙인돌봄사업단이 광주 동구 호남동성당에서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노숙인돌봄사업단은 코로나19로 시내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자 자체 예산을 편성해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사진=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제공

김 할머니는 "이곳에 오기 시작한지 상당히 오래됐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로 무료급식소가 다 문을 닫아 거리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소중한 한끼"라고 말했다. 그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했다,

천주교 노숙인돌봄단은 코로나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자 거리에서 지내는 이들을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직접 도시락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하루 한 끼로 생계를 이어온 노숙인들의 결식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는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과 손수 30인분의 도시락을 매일 만든다. 2015년부터 노숙인돌봄사업단이 아웃리치(길거리 돌봄) 사업을 통해 만난 인연들이다. 어느새 이들은 서로를 '동행하는 식구'라 부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광주에는 자활 21명, 일시보호 204명, 거리노숙인 8명, 재활요양 111명 등 340여명의 노숙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주교 노숙인돌봄단과 광주시 노숙인 시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숙인들은 다양한 이유로 거리로 내몰렸다. 코로나로 실직한 일용직노동자가 모텔 월세를 못내 쫓겨나는가 하면 사업 실패와 파산, 가정폭력, 이혼, 교도소 출감 등 사연은 저마다 달랐다.

노숙인 시설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마주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노숙인들이 시설 입소 등 행정적 지원을 거부할 때다. 신분 노출을 꺼리거나 시설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는 이유 등으로 도움을 거절하면 이들을 보호할 방법이 현재는 없다.

이 때문에 노숙인 시설 관계자들은 행정에서 노숙인 지원책을 마련할 때 시설 중심이 아닌 노숙인들의 특성을 고려한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정현 천주교 노숙인돌봄단 팀장은 "노숙인들 중에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행정은 이들이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같이 마련해야 한다"면서 "지자체에서 노숙인 실태조사를 하더라도 노숙인들이 자신의 신분이나 사정을 밝히기 꺼려하는 경우가 잦다. 지속적인 만남 등을 통해 서로 신뢰를 형성해야만 실제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srb7@hanmail.net전화 062-510-115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사랑방미디어'

일반 주요뉴스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