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100년 전 지방관이 쓴 '광주 기행문'

입력 2021.01.05. 16:11 수정 2021.01.11. 18:02 댓글 0개
광주역사민속박물관 '1896 광주여행기'
김희태·김경수씨 집필 조사 토대 저술
오횡묵 '지도군 총쇄록' 현대적 해설
서울서 광주 거쳐 지도 부임 8일 여정
관찰부 소재지 된 직후 풍경 담아

시간은 공간을 변화시키고 삶과 역사를 만든다.

19세기는 서구 열강의 진출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 강한 역사적 변혁의 시기였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1896년 광주 여행기'(심미안刊)에는 100년 전 광주의 모습과 당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출간 의미가 크다.

이 책은 1896년 지도군수로 부임한 오횡묵이 쓴 '지도군 총쇄록'을 기초로 엮은 조사연구서이다.

전남도 문화위원을 지낸 김희태씨와 향토지리연구소장인 김경수 선생이 맡아 제출한 최종 결과물을 토대로 저술작업이 진행됐다.

오횡묵은 당시 서울에서 배를 타고 지도군에 도착하기까지 8일간의 여정을 기록했다.

그가 지도군수로 부임한 1896년은 전국이 13도로 개편되면서 광주가 전남 관찰부의 소재지가 된 해이다.

그는 지금의 무안과 함평, 나주를 거쳐 광주에 도착했다. 그는 '지도군 총쇄록'에 경로와 일정을 꼼꼼하게 적었다.

오횡묵일행은 서창으로 들어와 쇠정(풍암동)과 진다리(백운동), 향교촌(광주향교)을 거쳐 광주읍성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지도군은 1896년 초 나주부에 속한 고을이었다. 나주부는 1895년 정부가 지방행정구역을 종전 8도 체제에서 23부 체제로 바꾸면서 생겨났다.

오횡묵은 이 격동기에 나름의 눈과 방식으로 세상사를 기록했다.

이때 남긴 기록이 '지도군 총쇄록'이다.

오횡묵은 1874년 무과에 급제했고 1800∼1900년대까지 여러 지방에서 관리로 일하다가 1906년 짧은 생을 마쳤다.

그는 지방관으로 일하며 매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총쇄록'이란 '아주 소소한 것까지도 깨알까지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다.

오횡묵은 지도군수로 상급 행정기관인 전남 관찰부가 있는 광주를 두차례 여행했다. 첫번째 여행은 1896년 가을 지도에서 일어난 해일의 피해 결과와 지도군 현황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이어 두번째 여행은 1897년 1월 새해를 맞아 전남관찰부에 신년 인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이중 광주여행은 지도와 해제반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배로 건너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육로 여행이었다.

이동거리는 약 80㎞이었고 여행에 걸린 기간은 3일이었다.

무엇보다 오횡묵은 관찰부 소재지가 된 직후의 광주 시내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광주 사또들은 대대로 '하모당'이라는 건물을 집무실로 사용했다. 옛 전남도청 맞은 편에 있었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록에 따르면 관찰사는 이 건물에 '선화당'이란 현판을 달고 자신의 집무실로 쓴 점이 이채롭다.

책 후반부는 오횡록이 1896년 9월12∼14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기록한 것 중 시내 풍경과 관련된 내용을 추려 소개했다.

그는 광주를 언급하면서 입석대와 서석대, 천황봉, 광석대, 풍혈대, 천제단, 용추계곡과 증심사, 원효사 등을 나열했다.

1890년대 광주 사람들이 광주천을 '조탄보'라 불렀고 이는 광주천의 물을 가두기 위해 만든 작은 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당시 광주읍성 동문 밖에는 민가가 없었고 지금의 장동과 동명동 일대이며 신분에 따라 다른 거주공간이 있음을 암시하는 기록도 있어 눈길을 끈다.

구종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장은 "오횡묵은 한강을 출발, 8일간의 항해 끝에 지도에 도착한 과정과 지도에서 광주 방문을 위해 3일간 육로 여행을 했던 경로 등을 밟아 여행에 얽힌 다채로운 일화, 당시의 시대상황을 소개했다"며 "그의 기록에서 우리는 당대를 재구성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은 올해 새롭게 개편한 박물관 전시내용을 담은 '상설전시도록'과 1년 동안의 조사연구 결과물인 '1896년 광주 여행기', '광주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삶' 등을 발간했다.최민석기자 cms2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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