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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눈길 산행의 추억
입력 2020.12.31. 10:31 수정 2021.01.04. 19:23 댓글 0개무등산이 온통 하얗다. 유난히 파란 하늘과 기분 좋은 대비를 보여준다. 무등산! 눈 뜨면 저절로 다가오고, 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처럼 바라보는 일은 이제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가끔 무등산에 얽힌 아련한 추억 속의 사연들까지 소환하면서. 그래서 무등산은 우리에게 산 이상의 '영원한 모성이며 마음의 고향'이다.
그날은 폭설 때문에 도시 전체가 완전히 설국으로 변했다. 도로 사정으로 수업에 늦은 아이들도 꽤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 해도 녀석은 5교시 수업이 끝날 때까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자취하는 녀석이라 당시로서는 따로 연락할 수도 없는 처지인지라 수업을 마치고 녀석을 만났다. 충분히 예상했던 녀석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뻔한 자초지종은 묻지 않기로 했다.
"오늘 눈도 오고 했으니 함께 무등산이나 가자." "네? 무등산을요?"
눈이 화등잔 만큼 커지면서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 산행은 무슨 산행이냐'고 뜨악해하는 녀석의 표정을 애써 외면하며 작심하고 증심사 방면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폭설 뒤 산행! 수업하기 위해 출근했던 선생이나 담임의 불같은 호출에 전혀 예상치 못하고 나온 녀석이나 피차 준비 안 되기는 마찬가지. 오늘 녀석에게 단단히 정신 좀 차리게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가 준비라면 준비의 다였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쳐가며 증심사에서 토끼등을 타고 바람재를 거쳐 산장으로 가는 길은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속으로 '저 녀석 때문에 지어서 생고생하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녀석도 '담임 한번 잘못 만났제. 결석했다고 이런 심한 벌을 주다니' 같은 표정인 듯해서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 멋쩍게 웃고 말았다.
눈밭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 말을 건넸다. "○○아! 나는 너를 볼 때마다 네 엄마가 늘 함께 떠오른단다. 언젠가 학교에 오셨을 때 보았던 흙 묻은 거친 손을 잊을 수가 없어. 그렇게 엄마가 고생하며 뒷바라지하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데 정신이 팔려서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내가 더 화가 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아무 말이 없었다. 보통 때 녀석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붉게 상기된 녀석의 볼 위로 갑자기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건네주며 잠시 녀석의 엄마가 가만히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듯한 상상을 했다. 곧바로 얼어붙어서 잘 닦이지도 않는데 애써 닦는 모습을 보니 '너도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게 있어서 이렇게 흔들리고 있겠지'하는 생각이 들자 괜히 나까지 울컥해지면서 짠한 느낌이 가득했다.
이어 말 대신에 그저 눈 부신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주고받았다. 어느 시인이 '아직… 안 밟은 흰 눈'을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 세 가지 중 하나라더니 그날 순백의 눈밭은 단순한 설경(雪景)을 넘어서 지워지지 않는 심화(心화)가 되고 말았다.
어렵게 어렵게 원효지구에 도착했더니 버스는 이미 오래 전에 끊긴 상태였다. 난감했지만 걸어오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허기도 지고 춥기도 하고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산수동 산장 입구에 도착해서 맨 먼저 눈에 띄는 포장마차에 들러 따뜻한 오뎅국을 나눠 마셨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몇 시간을 강행군했으니 아무리 젊은 혈기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둘 다 몹시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신 뜨거운 국물맛을 지금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훈련 잘 받았다고 3박 4일 특별휴가를 나왔습니다." "아니, 군대 가면 '엄마'라는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절로 나고, 그래서 휴가를 얻게 되면 집으로 불같이 달려가는데 왜 학교에 먼저 왔어?" "선생님 좀 보고 가려고요. 훈련받으며 선생님 생각 많이 났거든요."
지금은 녀석도 50대다. 그 누구 못지않게 좋은 가정을 이루어 건실한 아빠가 되어 있다.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아끼는 아빠다. "○○아! 너도 벌써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겼구나. 이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는구나. 마치 큰형과 막내동생 사이처럼 말이다. 막 교단에 서서 여러모로 미숙했던 새내기 선생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모습 보니 더없이 고맙다. 녀석아! 그래도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었어. 그래, 어떠냐? 눈 내리는 날 포장마차에서 그날 힘들었던 산행 회상하며 소주 한 잔!"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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