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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도 모르는 풍력발전 '장난질'
입력 2021.01.01. 13:21 수정 2021.01.03. 19:09 댓글 0개2021년 신축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모든 국민이 단체면역력을 가져야 하고, 경제력을 회복하고, 촛불개혁과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탄소중립 대장정도 본격 추진해야 한다.
선출직들 업자편만 들자 '주민발의' 나서
그러나 이 틈을 노려 업자와 짝짜꿍하며 국민을 우롱하는 폐단도 나타나고 있다. 文정부가 지방자치법을 고쳐가며 지방정치를 제대로 해보자는데 한 편에선 '장난질'이 벌어지고 있다.
화순군은 2019년 8월 풍력발전기 설치기준을 마을의 경우는 2km 이상, 10호 미만은 1.5km 이상 이격거리를 두도록(2km~1.5km) 군의회의 의결로 제정했다. 그런데 1년도 채 안된 지난해 6월 이 선 군의원이 이를 절반도 안된 0.7km~0.5km로 좁히자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풍력발전 설치 예정지역인 화순군 동복면 주민 300여명이 적극 반대하자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됐다. 3개월 뒤인 10월에 또다시 같은 군의원이 0.8km~0.5km 개정안을 내놓았다. 주민들이 반대시위까지 벌였으나 군의회는 주민 안전문제나 건강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1.2km~0.8km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군의원은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조례 제·개정은 군의원의 특권이니 주민의견에 연연할 필요 없다","땅값이 오른다","발전기는 커져도 소음은 더 작아진다"고 주장했다. 군의회가 이유도 없이 조례를 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충곤 화순군수는 '재의'요청을 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했다.
동복면이 선거구인 정명조 군의원은 풍력발전 사업자의 산자부 허가 과정에 주민동의서 조작과 관련되었다며 주민들로부터 고발당했다.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을 해와 장래가 촉망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신정훈 국회의원도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 역시 농산어촌이 겪고 있는 이런 비참한 현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리고 1개월 뒤인 11월 말, 풍력발전 업체인 '동복에너지'가 화순군에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했다. 무언가 서로 짜고 치는 듯한 의심이 든다.
주민들은 대통령으로부터 군의원까지 믿을 데가 없게 되자 '주민동의 없는 풍력발전 저지 화순군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조례를 원래대로 되돌리자"며 주민발의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개발행위 심사는 1년 이상 걸리므로, 심사가 마무리될 때쯤인 2022년 초가 되면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친다. 이때 지방 선출직들이 이번 조례개정 때처럼 무조건 허가해주고 자리를 떠나 버린다면 주민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다. 과연 풍력발전기를 주거지에 가까이 세우는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업자를 위한 행위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책위는 풍력발전 설치를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대책위에 따르면 동복에너지가 세우겠다는 풍력발전기는 타워높이 122.5m, 날개지름(로터) 155m, 총높이 200m로 6메가와트짜리 15기이다. 여의도의 63빌딩 높이가 250m이니까 5분의 4 높이이다. 화순군 동면에 이미 설치된 출력 2메가와트 짜리 8개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거대한 기계들이 줄줄이 세워지면 저주파, 소음, 가축 불임 등 피해가 얼마나 될지 모른다. 그래 주민들은 안전한 거리 설치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정부, '설치기준'과 '팩트' 제대로 밝혀야
화순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풍력발전 설치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설치기준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주민 피해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지방자치단체에 맡겨두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팩트'도 모른 채 찬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과연 촛불정부는 설치기준을 정하지 않는 산자부, 주민 건강은 모른 채 하는 지방 선출직들, 이해관계만 쫓는 업자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국민의 분노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데.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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