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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능보다 수능 이후의 교육이 더 중요한 이유
입력 2020.12.24. 16:19 수정 2020.12.27. 18:20 댓글 0개2021학년도 수능에는 약 40만 명의 수험생이 시험을 치루었다. 이중에는 시험을 잘 봐서 기쁘다는 학생보다 성적 때문에 심적 압박을 받는 학생들이 더 많다. 우리의 입시 환경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학생들도 있다. 우울증의 정도는 부모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드라마 SKY캐슬처럼 명문대 진학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후유증도 클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험은 끝났다. 인생은 새옹지마이고, 무엇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10년의 변화가 단 1년 만에 일어나지 않았는가. 세상을 조금 더 큰 시야로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창의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1990년대 말까지 공대의 인기가 지속되었다. 1962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면서 중화학공업 분야를 적극 육성함에 따라 화학공학과와 섬유공학과의 인기가 가장 높았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중동 국가에서 건설 붐이 일면서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의 성적이 크게 올랐다. 1980년대에는 삼성그룹 등 반도체 산업에 대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전자공학과가 최고의 인기학과로 떠올랐으며, 1990년대에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등 IT 산업의 부흥으로 인해 컴퓨터공학과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때부터 흐름이 바뀌었다. 최고 성적의 공대 출신자들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거나 부도 위기를 맞이하면서 의대가 공대를 추월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 의대가 최고의 커트라인을 형성하게 되었고, 다니던 명문대를 휴학하고 수능시험에 재도전해서 지방 의대로 재진학하는 학생들도 생겼다. 그 이유는 다른 직종에 비해 의사가 많은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안정적이면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의 선호도가 높고, 수능 점수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10년 후의 직업은 어떠할까? 그 시기는 온택트와 4차산업의 시대이다. 대면 만남을 온라인 화상으로 대신하고, 음식은 온라인 배달 앱으로 주문하며, 뉴스와 영화는 온라인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시청하고, 주요 일처리는 온라인 앱으로 해결한다. 이러한 온라인 패러다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9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미래의 주역들이 선호하는 직업 1위는 프로게이머, 2위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3위는 인터넷방송 진행자, 4위는 웹툰 작가 등으로 온라인 미디어 관련 직업이 상위권을 독차지하였다. 이 결과는 책보다 PC가 편리하고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욕구를 채우는 청소년들의 미디어 습관이 반영된 결과이며, 10년 후의 인기 직업군을 예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구글의 '미래교육 8가지 트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에 등장한 디지털 기술 일자리가 79% 급성장했고, 미래 직업 중 92%가 디지털 기술과 관련이 있으며, 모든 직업의 45%는 디지털 기술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현재의 직업 상당수가 사라지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드론 등 디지털 기술 일자리가 창출 및 연결된다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것은 출신대학보다 온라인이라는 초연결성을 중심으로 초전문성과 초차별화를 요구하는 1인 다역 전문가의 시대, 즉 '폴리매스(Polymath) 시대'를 의미한다.
수험생의 꿈과 삶의 만족도를 지배하는 요소는 개개인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오직 성적과 등급에 맞추어서 기계적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우리의 입시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새로운 미래를 역발상으로 극복하길 제안한다. 일선의 고등학교들은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소수의 학생들에게 관심을 두지만, 명문 학교와 참교육자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따뜻한 관심과 상담으로 희망을 줄 것이다.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이며, 교육은 백년지대계이고, 이것은 수능보다 수능 이후의 교육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이 어렵다면 제2의 교육자인 학부모의 역할도 있다. 자녀와 함께 인터넷과 서점에서 정보를 찾거나 주변 지식인과의 상담을 겸한다면 더 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최선의 교육이다. 과거 어느 공익광고에서 교육의 본질에 대한 혜안이 있었다.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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