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화수분 쌀뒤주

입력 2020.12.22. 18:25 수정 2020.12.22. 20:00 댓글 0개
이윤주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사회·지역사회에디터

화수분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담아 두면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의미로, 중국의 진시황과 관련된 설화에 나오는 '하수분'(河水盆)에서 유래했다.

하수분은 '황하수의 물을 채운 동이'라는 뜻이다. 진시황이 장병들을 동원해 만리장성을 쌓을때, 황하수를 길어다 큰 구리통을 채우게 했다. 그런데 그 동이가 상상을 못할만큼 커서 한 번 채워 놓으면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아 하수분이라 부른 것이 화수분이 된 것이다.

우리 조선시대에도 화수분 같은 쌀뒤주가 있었다.

영조때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1726~1796)가 낙향해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에 '운조루'를 지었다. 그리고 그 운조루의 사랑채와 안채 중간 쯤 되는 곳에 커다란 통나무 속을 파낸 원통형 쌀 뒤주를 놓아 두고 쌀을 채워 넣었다.

뒤주 아래쪽에 가로 5㎝, 세로 10㎝ 가량의 직사각형 모양의 문이 있는데 거기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무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라는 뜻으로 누구든 필요하면 언제라도 쌀을 마음대로 퍼 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쌀 3가마가 들어가는 그 뒤주에는 늘 쌀이 가득차 있었으며, 비워지기 전에 채워두기를 계속했다. 특히 쌀을 구하러 오는 굶주린 이들을 생각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뒤주를 두어 민망한 기색없이 운조루가 내놓은 쌀을 담아갈 수 있었다.

조상들의 나눔과 베품의 미덕이 다시 등장한 것이 '사랑의 쌀독'이다. 자치단체들이 쌀을 기부받아 주민센터 등지에서 쌀독을 운영하자 익명의 독지가들도 크게 늘어 아무리 퍼가도 줄지 않은 '화수분' 같은 쌀뒤주가 곳곳에 생겨났다.

광주에 이런 '화수분 쌀뒤주'가 있다. 바로 광주 서구 금호1동 '사랑의 쌀뒤주'다.

2006년 1월 처음 쌀을 채운 후 15년 동안 한번도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뒤주를 이용한 이들만 3만4천900여명. 뒤주를 채운 쌀은 7만9천500㎏으로 20㎏들이 쌀 3천975포대 분량이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때도, '코로나19' 사태에 힘겨운 올해도 뒤주는 빈적이 없다고 한다.

2020년이 열흘도 남지 않은 지금,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희망이 마르지 않은 이유다.

이윤주기자 지역사회부 부장대우 lyj2001@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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