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상무소각장의 변신을 기대하며

입력 2020.12.21. 18:16 수정 2020.12.21. 19:04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지난 봄 전일빌딩 245를 만났던 기억이 새롭다.

가슴이 먹먹했다. '철거됐더라면'하는 아찔함과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역사적 상처가 있는 공간을 이토록 아름답게 단장한 시관계자와 지역 전문가 집단에 대한 고마움이 뒤섞인 마음이었다.

이곳은 건축물의 역사적 의미, 철거에서 복원, 재생에 이르는 전 과정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스토리를 지닌다. 1980년 계엄군의 헬기총탄 자국은 전시공간으로 거듭나 하나의 설치 작품을 만나는 듯하고 옥상 정원은 옛 전남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비롯한 금남로 뷰를 가장 아름답게 선사한다. 지역민들에 대한 보답인지 전일빌딩245는 대한민국공간건축대상을 수상하며 지역 도시재생의 전범으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고있다.

광주가 또 하나의 도시재생 도전에 나섰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때 지역 갈등의 상징과도 같던 상무소각장. 심지어 시민들이 찾기에 편치 않은, 외지고 호감도도 높지 않은 공간이다. 첨예한 갈등으로 철거할 예정이던 소각장을 2년여의 거친 논란과 숙의를 거쳐 도시재생공간으로 살리기로 한 것이다. 이 갈등과 소외의 공간을 문화·교육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실험이다.

쓰레기 소각 공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인근 너른 부지에 광주 대표도서관을 지어 문화적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표 도서관 세계설계공모에 세르비아 건축가 브라니슬라프 레딕의 지상과 소각장 공장 상층부를 브릿지로 연결하는, 혁신적인 작품이 선정된 것이다. 당초 독자적인 복합문화공간을 거듭날 준비를 하던 소각장 공장이 대표 도서관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은 광주시와 시민들에게 생각지 못한, 행복한 과제를 던졌다.

당초 소각장의 독자적 복합문화공간화를 추진하던 시는 계획을 급선회했다.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도서관 설계와 공장동 재생 설계가 동시에 진행될 수 없어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여러 고민과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혐오시설의 문화공간화에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중추적 아이템이 더해진 것이다. 전일245를 이끌어냈던 팀들이 추진하고 있어 걱정보다 기대가 앞서기도 한다. 기대를 더하자면 새 복합문화공간은 브라니슬라프 레딕의 제안을 바탕으로 '도서관'으로서 새로운 자기정체성을 담보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럴때라야 복합문화공간 으로 거듭난 소각장이 개성과 경쟁력을 더할 수 있다.

세계적 건축가의 도서관이 관통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도서관과 상관없는 문화공간으로 변신할 경우 연계성과 맥락이 끊기는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광주에는 건축적으로든 기능적으로든 이렇다할 도서관 하나 없다. 새로 들어설 도서관은 이같은 광주시민들의 갈증을 채워야할 과제를 안고 있고, 도서관과 연계된 쓰레기 소각공장, 새로 들어설 복합문화공간은 당연히 그 특성이 반영돼야하는 것이다.

이곳과 서사는 다르지만 도서관이 지역 문화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나며 해당 지역을 살린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영국 타워 햄피츠의 '페캄도서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곳은 런던 외곽의 소외되고 삭막한 지역으로 방문자들이 거니는 일 조차 유쾌하지 않은, 런던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페캄 이전에 도서관이 13곳이나 있었지만 그 지역 주민 82%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스산한 곳이었다.

그러나 페캄 도서관이 들어서고 이 일대는 그야말로 새로운 명소로 급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2년여 동안 지역민들의 의사를 묻고 체계적으로 전략을 세웠다. 페캄은 도서관 기능에서 한발 나아가 탁아시설 둥 교육과 휴게·모임 공간 등을 마련해 지역 사회의 다목적 공간으로 세심하게 배려해 이 일대를 살려냈다. 이곳 도서관 이용자는 하루에 수만명에 달하고 답사자들을 위한 정기견학·안내 프로그램까지 운영되고 있다.

남 일이 아니다. 한 때 갈등의 상징이었던 소각장이 세계적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일은 이제 순전히 우리에게 달렸다. 여기에는 그만큼의 시간과 공력이 요구된다. 전일245도 재생에만 2년이라는 광주로서는 기록적인 과정이 투자됐다. 이제 과정에 공 들이고 투자하는 호사를 누려보자. 우리 그럴만하지 않은가.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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