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보] "이스라엘 레바논 접경서 공습 경보"뉴시스
- [속보] 美당국자 "이스라엘 이란 공격, 핵 목표 아냐"뉴시스
- [속보] "이란 이스파한 군 기지 인근서 3차례 폭발음" 이란 매체뉴시스
- [속보] "이란, 테헤란 등 항공편 전면 중단" CNN뉴시스
- [속보] "폭발음 들린 곳, 이란 육군항공대 기지 인근"뉴시스
- [속보] "이란 여러 지역서 방공포 발사" 이란 IRNA뉴시스
- [속보] "이란 영공서 항공기 최소 8편 회항" CNN뉴시스
- [속보] 의대생 휴학 신청 6개교 38명 늘어···재학생 56.5%뉴시스
- [속보] 日닛케이지수, 장중 1200포인트 급락뉴시스
- [속보] "이스라엘 미사일, 이란 내 시설 타격" 美ABC뉴시스
<칼럼> 동지(冬至), 다시 시작하는 날
입력 2020.12.21. 11:00 수정 2020.12.21. 19:03 댓글 0개영하를 밑도는 날씨에, 아침 등교 맞이가 상당히 힘들어졌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검은 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쓴 아이들은 더더욱 얼굴 알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가장 힘든 것은 차가워진 공기 때문에 열화상 카메라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습기 찬 안경을 내리고 앞머리를 올리고서야 겨우 체온 체크가 가능하다. 더뎌진 체온 측정에 줄은 길게 늘어서고 찬바람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차가워진 손에 알콜성 손소독제 바르기를 무척이나 주저한다.
어쩔 수 없이 손소독제 앞에 서서 '손소독제 바르세요', '손이 깨끗해야 좋아하는 사람 손도 잡을 수 있다'는 등 강압적이거나 말도 되지 않는 말로 학생들을 구슬린다. 급하게 짜낸 아이디어로 열화상 카메라가 있는 중앙 현관에 전기히터를 3대 이상 가동시키기로 했다. 열화상 카메라도 올라간 온도에 조금은 빠르게 반응하는 것 같았고, 체온 측정을 기다리는 학생들도 짧은 시간이나마 손을 녹일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12월, 어느 중학교의 아침 풍경이다.
이제 2020년도 10여 일 정도 남았다. 어서 빨리 보내버리고 싶으면서도, 이 상황 그대로 보내버리기엔 너무도 억울한 1년이었다. 돌아보면 2월 새 학기 준비 연수를 받으며, 선생님들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시간 단위로 100명, 200명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 깜짝 놀라고 두려워했던 그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3월이 되고 1~2주 늦춰지던 개학이 4월까지 연기되었고 결국 학년별 순차적인 온라인 개학으로 2020학년도가 시작되었다.
교사들은 온라인 개학에 대비한 원격수업에 대한 연수를 받으며 달라진 시대의 변화를 체감했다. 그사이 급격하게 오르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조금씩 안정세를 찾으면서 5월 중순 고3부터 등교수업을 시작했다. 중학교는 중3부터 5월 말, 6월 초까지 등교수업이 완료되었다. 랜선 너머로만 만났던 학생들을 대면했을 때의 긴장과 떨림, 기쁨은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원격으로만 진행했던 수업 과정에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습역량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었다. 학생들을 만나서 1~2주는 그동안 진행했던 수업내용을 확인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되었다.
대면 수업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어떤 모둠 활동도 허락하지 않은 '방역'을 중심에 둔 수업은 자칫 강사 중심의 학원 수업과 별반 차이를 두지 못하는 주입식 교육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느끼게 했다. 그렇게 수업에 고민하던 사이 북구 지역의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7월, 2주 이상 다시 원격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with corona'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절이었다. 이제는 수시로 원격수업에 들어갈 수 있음을 준비하고 수업도 평가도 그에 맞게 변화시켜야 했다. 어렵게 평가를 마치고 들어간 여름방학도 마음껏 누릴 수는 없었다. 광복절 집회 여파에 따른 인근 교회발 확진자 증가로 결국 개학도 원격으로 시작되었다.
전면 원격수업, 부분 등교로 시작한 2학기! 10월 이후 거리두기 1단계로 변화하면서 다시 전체 등교가 시작되었다. 소규모 학교의 기준이 300명 이하로 조정되면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거리두기를 전제로 한 민속놀이와 체험 활동 중심의 학년별 체육대회와 2, 3학년 지필평가, 온라인 학생회 선거 등을 무사히 치러냈다. 그리고 수능 이후 1,000명 대가 넘어서는 전국적인 확진자 증가세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으로 현재 2/3 등교를 실시하고 있다.
오늘은 12월 21일. 24절기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어릴 적 단순히 팥죽을 먹는 날로만 여겼던 길고 암울한 동짓날. 어른이 되고 교사로 살아가면서, 이제는 점점 길어질 해의 길이와 코로나19 종식을 향한 희망의 길이가 비례한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그 길고 어두운 시간을 건너고 있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새로운 날들을 준비하고 있다. 시쳇말로 '바닥을 친다'라는 말이 있다. 2021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우리는 잘 이겨냈다고, 잘 견뎌왔다고 어깨를 다독이며 서로의 온기를 나눌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 · <칼럼>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 · <칼럼> 학급 당 학생 수라 쓰고 학생 삶이라고 읽는다
- · <칼럼> 도둑맞은 학생들의 집중력을 되찾으려면
- 1경찰, 광주 카페돌진 승용차 국과수에 '급발진 감정' 의뢰..
- 2홍어카츠김밥·소금김밥···'신안 세계김밥페스타' 27일 개막..
- 3광주 도심 카페로 차량 돌진, 8명 중·경상..
- 4광주 상가 건물 1층 카페에 숭용차 돌진···다수 부상..
- 5경남도·경남TP, 네덜란드 방산기업 기술 협력 강화..
- 6BPA, 6월까지 해양수산 비즈니스·공공서비스 공모..
- 7경남창조경제센터, 대-스타 혁신성장 파트너스 참여기업 공모..
- 8복을만드는사람들㈜, 농림부 '농촌융복합 스타기업' 1호 선정..
- 9광주 도심 카페로 차량 돌진, 8명 중·경상(종합)..
- 10"아직은 집 살 때 아닌 듯"···.숨죽인 실수요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