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구순 장기수 서옥렬씨 "추석 때면 가족이 더 사무치게 그립죠"

입력 2017.10.02. 09:01 수정 2017.10.02. 09:22 댓글 0개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보고 싶죠. 명절 때면 더 사무치게 가족이 그립죠.”

광주지역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인 서옥렬(90)씨는 추석을 사흘 앞둔 1일 “여생을 북한에 있는 처자식의 품에서 보내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서씨의 삶은 이념 대결로 이어져온 남북 관계의 모순과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남 신안에서 5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고려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한국전쟁을 만나 인민군에 입대했다. 1955년 북녘에서 교원 생활 도중 결혼했다.

1961년 8월9일 아내와 두 아들(당시 5살·3살)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안내원들과 함께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고향에서 동생들을 만나고 한 달 뒤 월북하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구형과 선고를 합해 사형 소리만 6번을 들었지만, 최종 판결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아 90년 9월까지 29년간 옥살이를 했다.

사상 전향을 강요한 고문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 민주질서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다’는 준법 서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2000년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한으로 송환될 때 가지 못했다.

서약서가 전향서처럼 왜곡된 것이다. 사상전향제도와 준법서약서는 1989년과 2003년에 폐기됐다.

사실상 동족 대결 정책에 희생당한 그는 ‘아내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에 품은 채 고독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에도 밥 한 끼 함께 먹을 가족 없이 쓸쓸한 나날을 보내왔다.

그는 “형제들에게도 연좌제가 씌워져 교류하는 식구들도 없다”며 “명절도 고독과 그리움의 연속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명절 때마다 무안에 있는 부모의 산소에 성묘를 갔지만, 10여년 전부터는 건강이 악화돼 1년에 한 차례 정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자식들에게 전해주려고 출소 당일부터 일기를 써온 그는 명절 때도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글로 남겼다.

1998년 1월28일·10월5일에 쓴 일기에서 “온 겨레가 옛부터 축하한 명절, 그러나 남북은 갈라져 있다. 썰렁한 단칸방에 명절은 없다. 언제 하나로 즐거워할 때가 오려나”라고 적었다.

5개월 전 지병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서씨는 “아내가 살아있다면 꼭 함께하고 싶다. 가족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을 누리고 싶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의 송환이 이뤄지길 거듭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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