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최고의 선물

입력 2020.12.09. 17:12 수정 2020.12.17. 20:37 댓글 0개
주종대 건강칼럼 밝은안과21병원 원장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 때보다 빨리 찾아온 어둠 속에서 둥근 보름달을 발견했다. 겨울밤에 떠 있는 둥근 보름달은 맑고 깨끗했으며, 은은한 달빛은 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겨울밤이지만 바람은 그리 차지 않았고 오히려 시원함과 깨끗한 공기만이 주변을 둘러쌌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인적이 사그라진 도시 속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차량과 시끄러운 사람 소리가 없는 적막은 한가하다 못해 쓸쓸하게 느껴졌다.

조용한 길 위에서 갑작스럽게 2020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상실감에 나에게도 외로운 어둠이 밀려들었다. 귀갓길을 잠시 미루고 지난가을에 떨어진 마지막 낙엽을 밟으며 2020년을 돌이켜봤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일, 퇴근, 산책 등만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인 듯, 사람과 접촉을 피하면서 한 해를 보냈다. 2020년은 이 전의 평범한 삶을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지난 1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 속에서 거리두기 생활을 견뎌 왔을까?

그 누구에게 이 상황을 탓할 수도 없는 코로나 시대에서 우리는 한계에 다다른 스트레스와 그것은 풀어낼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갑갑함과 주체할 수 없이 튀어나올 것 같은 탈출 욕구를 걷고 또 걸으며 몸을 혹사하는 방법으로 나는 위안을 받았던가.

20대 대학시절 이후로 거의 매일 두 시간 이상을 걸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운동해야 했지만 약 10개월 동안 헬스장을 가지 못해 근육이 퇴화하고 가늘어져 복부 근육이 약해져 올챙이배처럼 부풀어 올랐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확진자가 아닌 확찐자가 되어 체중에 2kg 정도 불어있고 눈빛은 삶의 생기를 잃어 흐리멍덩해지고 몸 전체가 둔탁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내내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고 일하고 또 퇴근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누가 '재미있는 일이 있느냐?' 하고 물어보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때문에 2020년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Monotony(단조로움)'이다. 이번 한 해는 흥미와 사건의 역동성이 결여되었고 평화롭지만 따분하고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그런 1년여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떨어진 낙엽처럼 도심의 거리를 배회했다. 어둠이 내린 상가의 한편에서 불을 훤히 켜고 분주히 움직이는 한 사람이 보였다. 저녁 8시가 넘는 시간이었고 창문 넘어 반백의 돋보기를 쓴 재단사가 가위를 들고 옷감을 자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일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밀린 일을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래된 양복점 재단사의 모습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는 이유로 삶의 의미를 잊어버린 채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냈다. 그래서 일상에서 주는 아주 작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지냈다.

재단사는 세상이 혼탁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마땅히 해야 할 직분을 해나가고 삶에 헌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세상의 어떤 풍파에도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시금 내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이제 며칠 더 지나면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시작인 2021년을 맞이하게 된다. 절망적인 2020년을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뒤돌아보기 싫은 시간이 있었을 수 있다. 고된 일상 속에서 나 자신과 사랑스러운 가족, 친구, 동료, 선후배, 이웃들에게 1년간 너무도 잘 버텨왔다고 응원하며 격려하고 싶다.

2020년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희망이다. 내년에는 올해와 다른 아주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절망적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주저앉지 말고 꿋꿋이 일어나서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는 2021년을 기대해보자.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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