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바다의 반도체

입력 2020.12.15. 18:41 수정 2020.12.15. 18:41 댓글 0개
도철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경제에디터

"얼마에요." 한참을 뒤적거리던 어머니가 상인에게 물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한 값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머니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비싸네. 내렸다고 하더니 똑같네, 똑같아"

둘러보고 또 둘러보고 시골에 갈 버스 시간이 다 되도록 망설이다 겨우 하나를 집어 드신다. 그렇게 어렵게 집에 들어온 것이 바로 '김'이다. 지금처럼 포장이 잘 돼 있지는 않지만 제법 두툼하고 거친 김은 겨울 밥반찬으로는 최고였다. 김은 배식이 된다. 4남매가 서로 먹으려 다투다 보니 좋은 음식이 있으면 엄격(?)하고 공정하게 나누어지는 것이다. 양이 많은 날은 두 장이지만 보통은 한 장이 전부다.

그래서 먹을 때마다 고민이었다. 바로 몇 조각으로 나눠 먹어야 할까 하는 난제이다. 다른 반찬이 있으면 조금 여유롭지만 마땅하지 않을 땐 김을 싸서 먹는 게 아니라 얹어 먹는 수준이 되고 만다.

바닷가 취재 때 만난 어르신들도 김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벌이는 돼지, 근디 바닷일이 쉽지를 않어." 겨울에 생산되는 특성상 김 채취를 위해서는 살이 찢어지는 고통과 물먹은 해조류의 무게를 이겨내야 했다. 그래도 주 소득원을 포기할 수 없어 허리가 끊어져라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김은 영양의 보고였다.

일반 해조류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김치와 함께 '한국의 수퍼푸드'로 소개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마른 김 5장의 단백질이 달걀 하나와 맞먹을 정도다. 여기에다 비타민, 섬유질, 칼륨, 인 등 다른 영양소도 많고 저칼로리에 고단백 웰빙 간식으로 김을 즐기는 국가가 100여개국 이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서 김은 '바다의 반도체'라고 불린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 경제를 수출로 먹여 살려온 반도체에 빗대어 붙여진 별명이란다. 실제로 수출액을 보면 2010년 1억 달러를 달성한 이후 급격히 늘어 2017년 5억 달러를 넘었고, 지난해에는 5억8천만 달러로 3년 연속 5억달러 이상을 달성했다. 이 같은 실적은 그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켰던 참치 수출액을 넘어선 금액이다. 과거 서양에서 '바다의 잡초'로 불린 해조류가 그들의 입맛과 건강 지킴이 식품으로 재인식, 어민들의 반도체로 자리 잡았다. 맛과 건강에 대한 생각은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 도철 경제부부장 douls18309@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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