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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교 교육
입력 2020.12.14. 10:27 수정 2020.12.15. 13:29 댓글 0개올해 수능 시험이 치러지던 날 영국 BBC 방송은 '코로나 전염병도 막지 못한, 인생을 바꾸는 한국의 시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한국에서는 이 시험 한 번으로 학생들의 미래 인생이 바뀐다고 썼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온 나라가 숨을 죽이는데, 실제로 듣기 시험 중에는 모든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고, 당일 공무원들 출근 시간이 늦춰지며 군사 훈련이 중단되고 심지어 주식거래소 개장 시간도 늦어진다고 했다. 이 기사는 당일 BBC 기사 중에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목록에까지 올랐다.
수능 시험이 이토록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결국 수능 시험을 위한 것으로 되었다. 다시 말해 '교육'이 '시험'을 위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시험이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나 같은 윤리 교사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학생들에게 '윤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에 수능에 나올 윤리 문제들을 예상하고 그 답을 가르치는 데 윤리 수업 시간을 쓴다.
'윤리'와 '윤리 시험 문제'는 다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인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이 '윤리'라면, '윤리 시험 문제'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의 수능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다. 다음은 올해 수능 시험 사회탐구 영역 중 '윤리와 사상' 마지막 문제(20번)이다.
문제 : 다음은 한 강연자의 강의 내용이다. 이 강연자가 지지할 주장으로 옳지 않은 것은?
강연 내용 : 우리가 연속적인 동심원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첫째 원에는 자신, 다음 원에는 가족, 이어서 이웃과 지역 단체, 같은 도시의 시민과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원의 바깥에 인류 전체라는 가장 큰 원이 있습니다.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그 원들을 중심으로 끌어당겨 모든 인간을 우리의 동료 시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선택지 :
①세계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공유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②누구도 우리의 관심 밖에 있는 이방인들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③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도덕적 의무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④보편적 인류애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에 대한 친밀감을 중시해야 한다.
⑤어떠한 편견도 타인을 혐오하는 구실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문제는 '세계 시민주의'라는 윤리 사상을 학생들이 이해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강연 내용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지역이나 국적 등의 경계를 초월해 인류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한 사람의 세계 시민으로 생각하자는 주장이기 때문에 선택지의 ④는 이 주장과 부합하지 않고, 그래서 정답이 된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알아맞히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주의' 사상에 대해 공부하여 이해하고 있으면 된다. 교사인 나는 학생들에게 이 사상의 주장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면 된다. 내가 윤리 수업 시간에 해야 할 일은 그것이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이러한 수업은 위에서 내가 말한 '윤리' 수업이라고 볼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이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 수업인가? 위 수능 시험 문제와 관련해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이 질문들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생각해 보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토론해 보는 수업이 진정한 '윤리' 수업일 것이다. 우리는 가족과 이웃을 넘어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도 도덕적인 의무로 여기고 실천해야 하는가? 우리가 보편적 인류애보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친밀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인가?
'입시 위주 교육 체제' 아래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이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는 수업, 또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 보는 수업은 실제로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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