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사유리가 쏘아 올린 공과 정상가족

입력 2020.11.30. 18:47 수정 2020.11.30. 19:15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방송인 사유리의 비혼출산에 격려와 우려가 쏟아진다.

일본인인 그녀는 한국을 무대로 살아오다 일본에서 아이를 낳고 이를 세상에 공개했다.

놀랍게도 격려와 지지가 이어졌다. 비판도 나왔지만 인신공격성 비난이 의외로 적어 세상이 달라졌음을 반증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다. 비혼출산은 커녕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한 용감한 선택에 대해서도 비난해온 사회라는 점에서다.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이들에게 이 사회는 잔인하다. 그들을 지지하고 격려하기 보다는 미혼모·미혼부라는 낙인 찍기에 바빴다. 홀로인 엄마, 아빠 밑에서 자랄 아이들을 위한 어떠한 사회·경제적 제도적 뒷받침은 나몰라라 했다. 마치 개인의 선택이니 책임지라는 협박 같다고나 할까. 그런 이 사회에서 비혼출산이 가당키나한 일인가.

사유리가 '인공임신이 한국에선 불법'이라'고 하자 재깍 정부가 나서 아니라고 반박했다. 말장난에 가깝다. 이 나라서도 인공임신이 가능하다. 다만 '결혼한 부부'만 이용할 수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소위 남성과 여성으로 이뤄진 법적 부부만 인공수정이 가능하다. 비혼 여성은 물론이고 동성애 부부 등 다양한 형태의 또 다른 가족들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갔다. '다양한 가족'을 위한 제도정비를 다짐했다. 이 또한 이율배반이다. 출산의 권리가 존중된다면 낳지 않을 권리 또한 인정돼야한다는 점에서다. 알다시피 정부는 임신중절을 범죄로 규정한 형법개정안을 지난 달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후퇴라는 인권·여성단체의 비판을 뒤로 하고.

한쪽으론 다양성, 열린사회 운운하면서 다른 한쪽으론 여성을 통제·관리하는 전근대에 갇혀있는 것이다. 이같은 전근대성은 이 나라의 무늬 뿐인 출산율 정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출산율 운운하며 형식적인, 선전용 출산정책을 남발한다. 정작 출산정책이 절실한 이들을 위한 실질적 정책발굴엔 눈감는다. 온갖 사회적 제약에도 아이 키워보겠다는 이들에겐 손가락질이나 하며 사실상 아이를 키울 수 없도록 방조·강제한다. 실로 이중적이고 반인권적인 이 나라 대중과 그들과 야합한 정치의 적나라한 수준이다.

한 인간의 존엄, 생명윤리 측면에서 그들의 선택과 태어난 아이들은 사회로부터 최소한의 돌봄을 받을 권리를 부여받아야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의 권리란 '법적인', 남녀로 이뤄진 부부에 한정한다.

사유리가 쏘아올린 비혼출산이라는 공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상가족이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준거인가. 가족은 꼭 혼인이나 혈연으로만 구성돼야 하는가.

태어난 생명은 부모가 누구건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난 가을 가톨릭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커플의 법적 보호를 지지하면서 주목받은 시민결합법의 한국화가 절실하다.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이 행정·의료·금융 분야에서 부부에 준하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우리나라도 '생활동반자법'이란 이름으로 논의가 시작된지 오래나 이번 국회서는 논의조차 없다.

시끄러운 출산율 걱정이나 도덕율에 앞서 아이 키울 수 있는 환경 조성, 인간으로서 존엄의 권리 보장이 선행돼야한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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